장기적 수면 부족, 암·당뇨병·심장질환·우울증·자살생각 유발
장기적 수면 부족, 암·당뇨병·심장질환·우울증·자살생각 유발
  • 이성교 기자
  • 승인 2019.09.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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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적정 수면시간 유지해야 성장 촉진하고 뇌 보호할 수 있다”
“불규칙한 수면 습관·과도한 수면도 뇌혈관질환 발병 위험성 높인다”

[베이비타임즈=이성교 기자]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10명 중 4명이 적정한 시간만큼 잠을 자지 않아 성장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수면 부족이 육체적으로 비만을 불러오고 정신적으로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경고한다.

수면 결핍은 신체적으로도 암, 당뇨병, 혈관·신경·폐 질환 등 만성질환을 유발하고 동맥경화 위험을 높이며 치매증상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장애 치료전문가들은 “잠이 성장을 촉진하고 뇌 보호와 면역 체계를 향상시키는데, 장기적인 수면 부족은 질병이나 치매 증상을 일으킬 위험을 키우고 건강에 지속적인 손상을 가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의 수면 부족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세계 각국의 연구결과를 통해 알아본다.

◇ 하루 8시간 이하 수면, 심장질환 가능성 높여 = 유럽심장학회가 성인 10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하루 6∼8시간 이하의 짧은 잠을 잔 성인은 6∼8시간 수면자보다 향후 9년간 심장질환 발병위험이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6∼8시간 이상 긴 잠을 잔 성인의 심장질환 발병 위험도 6∼8시간 수면자보다 33%나 높았다.

연구를 이끈 그리스 아테네 오나시스 심장수술센터의 에파메이논다스 파운타스 박사는 “연구결과는 수면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심장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파운타스 박사는 “수면이 포도당 신진대사, 혈압, 염증 등 심혈관질환과 관련 있는 생물학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장기간의 수면 부족이나 과도한 수면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심장재단의 수석간호사 에밀리 맥그라스는 “심장 및 순환기 건강과 관련해 이번 연구는 수면 부족이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심혈관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 “수면 부족하면 알츠하이머병 진행 빨라져” = 하버드대 의대의 메흐디 요르피 박사와 보스턴대 의대의 선 닝 연구원이 공동 저술한 보고서는 수면 부족과 그로 인한 생체 리듬의 파괴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인지 능력 저하를 가속한다고 밝히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표징으로도 통하는 아밀로이드 베타(amyloid beta)와 타우(tau) 단백질 변화를 분석한 결과 하룻밤만 잠을 못 자도 아밀로이드 베타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깊이 잠드는 서파수면(slow-wave sleep)을 방해하면 아밀로이드 베타 수위가 30%가량 높아진다.

뇌와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에 타우 단백질이 생기면 신경세포가 손상됐다는 의미인데 하룻밤 잠을 못 자면 뇌척수액의 타우 수위는 50%까지 올라간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수면·각성 사이클이 아밀로이드 베타보다 타우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인지 기능 퇴화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뇌의 학습·적응 능력과 관련이 있고, 타우 단백질은 뉴런(신경세포) 간의 신호 교환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 놀이헌장 내용.
어린이 놀이헌장 내용.

◇ 수면 부족하면 동맥경화 위험 높인다 = 수면 부족이 동맥경화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시스템 생물학센터의 필립 스워스키 박사 연구팀은 수면 부족이 염증 유발 백혈구를 증가시켜 동맥 혈전(plaque)을 증가시킨다는 쥐 실험 결과를 지난 2월 발표했다.

유전자 조작으로 동맥경화가 발생하게 만든 일단의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7~9시간 계속 자게 내버려 두고 또 다른 그룹은 중간중간 소음으로 잠이 깨게 한 결과 시간이 가면서 토막잠을 잔 그룹이 제대로 수면을 취한 그룹보다 동맥의 병변이 더 크게 형성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체중이나 혈중 콜레스테롤은 두 그룹 모두 변화가 없었으나 동맥 혈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그룹이 잘 잔 그룹보다 3분의 1이나 더 컸다.

잠을 못 잔 쥐들은 각성과 식욕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시상하부(hypothalamus)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하이포크레틴(hypocretin)이 잠을 잘 잔 쥐들보다 적었다.

하이포크레틴은 골수에서 백혈구의 생산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잠이 부족하면 하이포크레틴이 줄어들고 이것이 염증과 동맥경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 “수면 부족하면 DNA 손상, 큰 병 부를 수도” = 홍콩대 연구팀은 지난 1월 충분히 잠을 자지 않거나 밤에 장시간 각성 상태에 있으면 DNA 구조를 손상해 심각한 만성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DNA ‘산화 손상(oxidative damage)’으로 생길 수 있는 질병에는 암, 당뇨병, 혈관·신경·폐 질환 등이 포함된다.

홍콩대 연구팀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자신들에게 직접 실험한 연구결과 보고서에서 “사흘간 정상근무를 끝낸 후에, 그리고 야간근무를 한 다음 날 아침에 각각 혈액샘플을 만들어 분석한 결과, 야간 교대 근무를 한 의사는 주간 근무자와 비교해 DNA 손상 위험이 30% 높아졌다”고 밝혔다.

하룻밤을 지새워 심각한 수면 부족에 빠진 의사들의 경우에는 DNA 손상 위험이 최고 25% 추가 상승했다.

보고서는 “이번 연구로 수면 부족과 DNA 손상의 연관성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 수면 부족하면 청력 나빠진다 =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이비인후과 최지호·김보경 교수팀은 수면 부족이 청력 저하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수면을 박탈한 그룹(12마리)과 그렇지 않은 그룹(15마리)으로 나눠 청력(청성뇌간반응)을 비교 검사했다.

이 결과 수면을 박탈당한 쥐들은 대조군보다 청력 수치가 떨어진 것은 물론 혈액 내 염증성 사이토카인(인터루킨-1β)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한 것으로 관찰됐다.

또 청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달팽이관의 라이스너막(Reissner's membrane) 파열과 부동섬모(stereocilia)의 형태학적 손상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수면 박탈이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증가, 이온 항상성의 이상, 유모세포(hair cell)의 손상 등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청력 저하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보경·최지호 교수는 “수면 부족은 심혈관계 질환,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등은 물론 청력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평소 적정 수면시간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불규칙한 수면 습관, 뇌혈관질환 발병위험 2배 높여 =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김병성·원장원·권은중)은 한국인 유전체 역학조사 사업에 참여한 40∼69세 2470명을 대상으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단위로 정기적인 추적조사를 한 결과, 평상시 수면시간과 심뇌혈관질환 사이에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 뇌혈관질환에 국한해 발병위험을 2배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심뇌혈관질환은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생기는 협심증, 심근경색증과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 등이 대표적이다.

과도한 수면도 수면 부족과 마찬가지로 체내 염증성 표지자들을 증가시키고 면역기능을 떨어뜨림으로써 심뇌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했다.

김병성 교수는 “이번 연구는 10년이라는 긴 추적 기간을 통해 수면의 시간뿐 아니라 수면의 규칙성과 혈관질환과의 관련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중년 이후 치명적인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40대 이상이라면 하루 7시간 정도를 자고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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