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칼럼] 복합이슈를 바라보는 세 가지 눈
[김종구칼럼] 복합이슈를 바라보는 세 가지 눈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9.09.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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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서울대학교총동창회 이사·前 국방부 국방홍보원장
김종구 서울대학교총동창회 이사·前 국방부 국방홍보원장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반격,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파기)와 일본과 미국의 반응, 이른바 ‘조국 사태’와 일부 대학에서 촛불시위,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미·중 무역분쟁 그리고 벌써 석달 이상 지속되는 홍콩의 시위사태 등으로 나라 안팎이 무척이나 시끄럽다.

하긴 우리 근현대사에서 ‘나라 안팎이 시끄럽지 않은’ 때가 언제 한때라도 있었던가!

지난 1세기 동안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한국 근현대사를 나는 ‘망국·분단·전쟁·쿠데타 그리고 민주주의 혁명’으로 요약하길 좋아한다. 물론 시끄럽다는 것이 다 나쁘단 뜻은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는 뜻도 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뜻도 된다.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사회가 역동적이고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도 된다.

나는 천성이 북방의 추위를 좋아하고 반면 번잡하고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춥고 조용한 나라’를 찾아 일 년에 한두 차례 강의 봉사 겸 여행을 떠난다. 올해도 늦가을께 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주 나다니는 몽골(Mongolia) 같은 나라에 나가보면 우리 한국이 얼마나 시끌벅적(?)한 나라인가를 아주 실감할 수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한가로이 생활하며 한국 쪽을 바라보면 온갖 소음들이 마치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 인터넷 사정도 별로라서 자주 한국 뉴스를 접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어떤 의미에선 “참으로 재밌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끄러움’ 그 자체보다 날마다 쏟아지는 온갖 사건과 현안(이슈)에 대한 분별이나 판단이 생각만큼 그리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쏟아지는 이슈가 너무 많아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더 큰 어려움은 대다수 현안들의 성격이나 양상이 대단히 복잡다단하고 상황 진전이나 사태발전도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시시비비 판단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뉴스의 진위 여부조차 제대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최근 한국사회를 달구고 있는 각종 현안의 절반은 ’복합이슈‘라고 부르고 싶다. ‘전례없는 복합위기(Unprecedented Complexed Crisis)’라는 외교·안보 용어에서 따온 말이다. 그만큼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다루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현안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는’ 현대인들의 능력은 예컨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비하면 아마도 백배, 천배 이상 신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은 크게 달라져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소용돌이치며 변화하고 있는 것이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적 환경이요 생존의 제반 조건이다.

가끔 가족이나 주변 친지들로부터 뉴스 이슈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엊그제는 “홍콩사람들이 왜 석달씩이나 저러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솔직히 요즘 인터넷상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 운운하는 댓글을 보면서 나는 언론 출신, 기자 출신이란 사실이 좀 부끄러운 적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해줄 때만큼은 묘한 자부심이나 안도감 같은 걸 느낄 때도 있다.

웬 자부심이냐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부심이나 안도감은 ‘(그 문제에 대해) 좀 안다’ 혹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데서 오는 것 같다. 공부도 웬만큼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뉴스를 읽을 줄 안다’ 혹은 ‘뉴스나 미디어를 입체적, 종합적으로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능력인 것 같다.

언론 출신, 특히 기자 출신이라면 대개가 이러한 능력이나 혹은 외람된(?) 자신감 때문에 웬만해서는 타인의 관점에 맹목적으로 휘둘리거나 대중적 위세에 ‘부화뇌동’ 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요즘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정치와 연관돼 있는데도 ‘정치’를 너무 모르거나, 터무니없이 곡해하거나, 심지어는 무슨 ‘사라져야 할 괴물(?)’쯤으로 보고 혐오 내지는 증오까지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음을 본다.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공부 좀 했다는 주변 친구들 가운데도 의외로 많다. 이는 정치를 ‘선거판’으로, 국회의원 등 정치인을 ‘싸움꾼’ 정도로만 바라보는 데서 오는 잘못된 관점이며 “공동체의 제반 문제, 리더십과 팔로워십(Followership), 갈등의 조정, 정책의 선택,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결정”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점의 건강성’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 우리 사회의 건강성 그리고 현안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 잡히고 균형 잡힌 관점’을 위해 필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역사의식의 함양’이라고 본다. 솔직히 지금 한국사회의 중견(시니어 세대)들조차 학창시절에 이런저런 이유로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인류적 사명감은 고사하고 자기 나라와 민족 등 공동체의 역사, 문화, 전통도 모르고 사니 매사에 주체성 있는 사고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역사적으로 온당한’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동체의 역사, 문화, 전통에 무지하여 그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고, 게다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주체성마저 약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 대신 하나같이 국가나 정부, 위정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그 사회나 국가는 건강하고 튼실한 미래를 기약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를 아는 사람은 ‘이 세계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혹은 그러한 인간군상이나 집단들의 끝없는 욕심과 ‘힘’이 지배하는 세상, 그러한 속에서도 휘청거리며(?) 한 걸음씩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어온 것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ce)’의 역사이다. 그 속에서 약한 자는 더러 밟히기도 하고 아예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도 한때 완전히 죽었다가 기적같이 다시 살아난 나라이기에 남들보다 좀 더 강하고 현명하고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긴 호흡으로 돌아보고 또 내다보건대 오늘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과제는 ‘미디어 교육’과 ‘정치 교육’ 그리고 ‘역사 교육’이다. 실상 ‘영어 교육’보다 몇 배로 중요한 게 이 세 가지 교육인데 우리는 아직도 혼이 없거나 시민적 양식(良識)이 없거나 속된 말로 성찰과 내공(?)이 부족한 국민을 대거 양산하고 있다.

다행히 젊은 시절 남다른 고생은 좀 했지만 일찌감치 ‘미디어’와 ‘정치’를 이해한 나는 요즘 뒤늦게나마 역사 공부에 몰입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너무나 잘 보인다.

/ 김종구 서울대학교총동창회 이사·前 국방부 국방홍보원장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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