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유머학개론] 놀려보세요!
[이정수의 유머학개론] 놀려보세요!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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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이정수 개그맨 겸 주부작가

옛날에는 유머가 부족한 사람들이 웃긴 이야기를 외우고 다니던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어릴 때 그랬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웃긴 이야기를 외우고 다녀봐야 옛날 사람이라는 소리 밖에 못 듣습니다. 요즘엔 애드리브(ad-lib) 같이 상황에 맞는 유머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대체 그런 애드리브는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바로 이 글에서죠. (웃음) 이번 글에선 유머의 기술 중 가장 쉬울 수 있는 ‘놀리기’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놀리기는 유머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입니다. 가장 편하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죠. 놀리기라는 표현이 어감상 안 좋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쉽게도 놀린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 놀리기가 어째서 가장 쉬운 유머 기술인지 알 수 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빠와 아기가 같이 있을 때입니다. 아빠가 된 것도 처음이요, 아기를 보는 것도 처음이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아기와 즐겁게 있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하는 것이 놀리기죠. 아빠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아이를 놀리다가 결국 아이 울음이 터지면 엄마에게 욕을 먹으면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지만요.

일단 놀린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방송에서의 웃음 포인트 중 상당수는 놀리기입니다. 무한도전에선 유재석(선배님. 이하 호칭은 생략하겠습니다)이 박명수를 웃기는 방식도 놀리기고, 신서유기에서 강호동을 지적하는 이수근도 놀리기입니다. 유세윤의 담력 훈련 영상도 놀리기입니다.

이토록 많이 사용되는 놀리기에 나쁜 이미지가 생긴 것은 한계를 모르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놀리기의 기술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계점이 어디인지 잘 알고 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계점을 잘 찾는 것은 그야말로 ‘눈치’와 ‘감’입니다. 이런 감은 다수의 경험을 통해서 생길 수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빠가 아기를 놀리면서 놀고 있을 때 아이가 좀 울어도 엄마는 참고 넘어가 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 성격이 나빠질 때까지 놀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놀리다 보면 울음도 터지겠죠. 그러면서 경험이 쌓이고 경계를 알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이 정도까지 하면 안 우는구나! 이 정도는 좋아하네?” 이런 유머의 경계가 생기면 그 순간부터는 놀리는 재미가 서로에게 생깁니다. 그러면서 아이와 친해지고 유대가 쌓이겠죠. 어린 시절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놀리면서 친해져 가던 것과 비슷하죠.

저희 부녀의 이야기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6살 된 딸과 마트에 갔을 때 일입니다. 방귀 뀌는 것에 재미를 붙인 딸이 방귀를 너무 힘 있게 뀐 거죠. 그러다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 조금 ‘뿌왑!’ 하고 나왔습니다.

사실 어른들도 한두 번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평생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치욕적인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 딸에게 이것이 그리 치욕적인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냥 살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던 거죠. 아이가 앞으로 살면서 겪을 많은 힘든 일들도 즐거운 에피소드로 바꿀 수 있길 바라면서요.

화장실에 가서 뒷정리를 하면서 딸의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눈치 보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다 수습이 된 후에 진정이 됐다 싶어서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새우눈을 뜨고 웃으면서 “똥방구!”라고 놀렸습니다. ‘똥방귀 뀌었데요~ 뀌었데요~’ 이렇게 놀리면 이건 감이 없는 겁니다. “똥방구!”라고 놀리자 딸이 웃었습니다. 웃었다는 것은 이걸 얘기해도 된다는 승낙인거죠. 그래서 자꾸 얘기해줬습니다. 역시 애들은 똥만 들어가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사건을 이야기 해줬습니다.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딸과 저는 유대감이 남다릅니다. 제가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비밀도 저랑 가장 편하게 공유하죠. 그러니까 저와 딸이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아내에겐 비밀(인걸)로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똥방구’ 사건을 아내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건이 딸에게 그리 큰 비밀이 아닌 상황이 된 거죠. 사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는 엄마에겐 비밀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놀려놨더니 그 상황이 자기도 웃긴 상황이 되어 버린 거죠. 그러니 편하게 오픈해도 되는 겁니다.

유머가 이렇게 대단합니다. 치욕적인 일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바꿔주죠. 놀림의 경계만 잘 지켜준다면 놀림은 유머를 넘어서 힐링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거듭 강조하는 것은 놀림이 가능한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제 어린 시절 최고의 코미디는 영구, 맹구 같은 바보들이였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죠. 영구가 무슨 말을 하면 옆에서 누가 혼을 냅니다. 변방의 북소리라는 유머일번지의 코너에선 심포졸이 바보짓을 하면 임하룡 대장이 들고 있던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면서 주의를 줍니다. 당시엔 이런 상황을 너무 좋아했었죠. 그런데 요즘은 이런류의 코미디가 거의 없습니다.

당시엔 영구를 그냥 웃기는 동네 바보로 사람들이 인식했지만, 지금 일종의 장애로 생각하다보니 조심스러워진 것입니다. 예전엔 웃겼지만 지금은 조심스러워진 유머의 경계 변화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놀리기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선 나보다 상대적 격차가 큰 약자는 놀려선 안 됩니다. 약자를 놀려선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인 거죠. 그래서 상대를 고를 때는 나와 비슷하거나 강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사실 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긴 합니다. (웃음) 배짱이 있다면요!

그리고 놀리는 부분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공격해도 어느 정도 괜찮은 범위만 공격해야 하는 거죠. 완전히 숨기고 싶어 했던 비밀인데 그걸 느닷없이 사람들 앞에서 오픈하면서 공격하는 사람은 진짜 공격해서 강냉이라도 털고 싶습니다. 적당한 놀림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감입니다.

또 자신이 놀릴 수 있는 캐릭터인가도 중요합니다. 평소 사람들에게 비춰진 내 모습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하거나 밉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면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더 밉상이 될 수 있는 유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투입니다. 놀리는 말투가 귀여워야 합니다. 유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죠.

대부분의 코미디언들은 귀여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화를 내도 진짜 화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죠. 박명수가 호통을 칠 때 사람들이 웃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뭔가 만만해 보이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니까요.

놀릴 때도 귀여움이 녹아 있어야 상대가 웃으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놀리면 자칫 법정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 유머의 가장 쉬운 기술을 알려드렸습니다. 보셨다시피 쉬운 기술이라고 했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일단 조금씩 시도해 보세요.

운동을 좀 했다는 사람들 중에 턱걸이를 못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턱걸이가 안 되니까 랫풀다운 같은 운동으로 대체하곤 하죠. 하지만 결국 턱걸이를 하려면 다른 대체 운동이 아니라 턱걸이 자체를 해야 합니다. 안 되도 하다보면 결국 할 수 있게 되죠.

유머도 그렇습니다. 대체 방식으로 SNS 같은 곳에서 사람과 대면하지 않고 글로 웃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대체 유머입니다. 유머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야 비로소 유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사람들 사이에서 해보세요. 점점 재미있을 겁니다.

 

<개그맨 이정수 프로필>
- 현) 네이버 칼럼니스트
- 현)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라행세) 출연
- 이리예 주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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