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SK케미칼 대표 등 34명 무더기 기소
‘가습기살균제’ SK케미칼 대표 등 34명 무더기 기소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9.07.2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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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발생 이후 8년만에…환경부 서기관, 기업과 유착 확인
1차 수사 피했던 관련자 대거 포함…조직적 증거 인멸도 이뤄져

[베이비타임즈=김복만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8년여 만에 관련자 34명이 무더기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의 사건 재수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주무부처인 환경부 직원과 가습기 살균제 기업이 유착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혐의도 새롭게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기소하고,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재조사한 검찰이 사건 발생 8년여 만에 2016년 첫 사법처리 당시 처벌을 피했던 관련자들을 포함해 책임자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우선 SK케미칼 홍 전 대표 등 4명,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 등 5명, 필러물산 김모 전 대표 등 2명, 이마트 전직 임원 2명, GS리테일 전 팀장 1명, 퓨엔코 전직 임원 2명 등 총 1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등의 안정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과실로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2016년 첫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독성실험 결과에서 CMIT·MIT 원료물질과 피해의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검찰 수사는 CMIT·MIT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재개됐다.

검찰은 “1994년 최초 가습기살균제에 개발 당시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연구노트 등을 압수해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부실하게 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와 시민단체가 18일 오전 11시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은폐 시도 의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와 시민단체가 18일 오전 11시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은폐 시도 의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년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를 재판에 넘기고서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에선 가습기 살균제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대 보고서는 ‘가습기 메이트’에 노출된 실험용 쥐들에 병변이 발생하고 백혈구 수치가 감소해 안정성 검증을 위해 추가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은 추가 연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종 보고서(1995년 7월 발간)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 메이트 판매에 들어갔다.

유공은 ‘물에 첨가하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히 살균해주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신문 광고도 시작한다. CMIT·MIT는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유공 가습기 메이트’에 포함된 물질이다.

SK케미칼은 2000년 유공의 가습기 살균제 사업 부문을 인수해 같은 제품을 계속 판매했다.

옥시가 만든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의 원료물질로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공급한 SK케미칼 전 직원 최모씨 등 4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SK케미칼 측은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소개하고 관련 실험도 진행한 사실 등이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2002년부터는 생활용품 제조·판매 노하우가 있는 애경산업이 가세해 SK와 손잡고 ‘가습기 메이트’ 판매를 시작했다. 애경 역시 제품 출시 전에 SK케미칼로부터 서울대 연구 보고서를 받고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제품을 출시했다.

영국의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가 2001년 옥시를 인수한 뒤 2000년 출시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대한 안전성 점검을 하지 않다가 피해를 키운 것과 비슷한 구조다. 안전성에 대한 기업의 근본적인 인식 부족이 피해자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게다가 SK·애경은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은지 문의하는 고객 불만 사항을 다수 접수하고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환경부 서기관이 내부 정보를 가습기 살균제 기업에 누설한 정황도 밝혀졌다.

환경부 서기관 최씨는 2017~2019년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등을 제공받은 대가로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와 가습기 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18년 11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수사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받는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작업도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SK케미칼은 안정성 부실 검증 사실이 확인되는 핵심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숨겼으며, 애경산업과 이마트 등은 직원들의 PC나 노트북을 은닉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밖에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양모씨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부탁으로 수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이달 19일 기준으로 6476명이며, 이 가운데 1421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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