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무 아닌 자율” ‘낙태의 비범죄화’ 위한 입법방향은?
“출산=의무 아닌 자율” ‘낙태의 비범죄화’ 위한 입법방향은?
  • 김은교 기자
  • 승인 2019.06.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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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보건법 전면 개정해 ‘성과 재생산 건강권’ 보장해야
낙태, 여성의 자기결정권 확보vs. 생명경시 윤리문제 행위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지난 4월11일. 낙태죄 도입 66년만에 임신종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초유의 판결이었다. ‘7대2’. 합헌에 손을 든 재판관은 단 2명 뿐이었고 낙태죄는 사실상 폐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헌법불합치 입장 관련 헌재 판결의 요점은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에 위치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학업 및 직장생활, 경제적 불안정, 상대 남성과의 교제지속 및 결혼계획 의지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출산은 여성의 삶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낙태죄는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다는 본래 목적과는 별개로, 헤어진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또는 이혼소송 분쟁의 압박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최근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형법 제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1항 동의낙태죄는 오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그 효력이 남아있게 된다. 입법기관의 관련 법 개정을 위한 준비 시한이다. 1953년부터 존치돼 온 기존 낙태법 조항이 이제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위한 입법부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입법과제 토론회.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입법과제 토론회'.

◇ 법 개정 핵심 가치 ‘성과 재생산 건강권’ 지향해야

전문가들은 관련 법 개정을 위한 핵심 가치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임신중단을 인권으로 형성하는 흐름이다. 모든 국가는 인간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을 존중·보호·이행할 의무를 가지므로 낙태와 피임을 제한하는 법과 정책 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과 재생산 건강권 차원에서 국내 모성 관련 법 정책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장 위원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모자보건정책의 전면적인 전환과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현재 피임·임신·임신중단·출산 등의 성과 재생산 건강 관련 국내 정책은 ‘모자보건법’에 그 기본방향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작 모자보건법에는 정책 대상자인 여성과 영유아의 권리가 사실상 배제돼 있다. 제정 배경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 또한 국가의 ‘인구조절정책’을 담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 초기 모자보건법 ‘모성=의무’. 전면 개정 필요

모자보건법은 1960년대 산아제한을 목표로 했던 가족계획사업의 법적 근거로 1973년 제정됐다.

이 법은 제정 초기 당시, 건강에 대한 권리가 아닌 모성애에 대한 의무가 중심이었다. 일본의 우생보호법에 기반해 낙태한 여성과 시술자에 대한 처벌을 전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낙태 허용 사유를 규정한 특별법을 별도로 제정했기 때문이다.

모자보건정책은 1980년대 출산억제정책이 효과를 거둔 이후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을 낮추는 정책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때 등장한 건강권의 개념은 ‘모성의 건강권’이 아닌 ‘건강한 자녀출산’이라는 인구정책적 관점에 한정돼 있었다. 모성은 ‘의무’였다.

2017년에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법의 일부개정을 시도, 가족계획사업의 법적 근거를 모두 삭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인구정책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한계는 해결할 수 없었다.

장 위원은 “모자보건법은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보건정책이자 유일한 법적 근거”라며 “지금이 바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전환의 시기”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낙태죄 관련 형사 처벌 규정을 폐지하고 시술 의료인의 과실을 묻는 업무상 동의낙태죄 규정 역시 삭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인공임신중절, 건강보험 통합으로 ‘비용화 안정’해야

장 위원은 “안전한 임신중단으로의 접근을 위해서는 임신중단 의료서비스를 기존의 보건의료체계인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리고 “만약 해당 정책이 실현될 경우, 인공임신중절 비용의 안정화가 가능해져 여성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관련 건들에 대한 국가 정보 차원의 통계 수집도 용이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 위원은 “모자보건법 제12조인 ‘인공임신중절 예방 등 사업’에 대한 규정이 성과 재생산 건강권 실현을 위한 정보제공·교육사업 등으로 변경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미성년자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피임 및 임신중단 의료서비스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물품·비용·상담·정보 제공 등이 가능한 정부차원의 표준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여성계, 형법상 ‘낙태의 죄’ 전체 삭제 촉구

낙태죄 폐지를 바라보는 각계의 입장은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고 상이하다.

여성계를 대표하는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임신중단 지원은 일반적인 의료행위로 접근해야 한다”며 입장을 밝혔다.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권리 보장은 낙태의 비범죄화와 의료적 지원체계 구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민 대표는 여성계의 입장을 대변하며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낙태 처벌 원칙 및 예외적 허용사항을 제시해 둔 ‘모자보건법 제14조’도 완전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 의료계, ‘임신중단 주수’ 사회적 협의 필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인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보건 의료적 측면을 대표 발언했다. 그 중 지속적으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임신중단 주수 관련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수술’이란,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수술을 말한다.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는 그 정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국내 모자보건법 시행령에서는 그 시기를 임신 24주로 정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22주, 국제 산부인과학 교과서에는 임신 20주로 지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신 12주 이내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시행될 경우 상대적으로 자연유산보다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14주 이상의 ‘중기 임신중단’을 시행할 경우, 위험성과 수술방법의 복잡성이 커져 의료인의 위험부담이 높아진다는 입장도 있다.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고경심 산부인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 청소년 및 장애 여성, 초기임신중단 쉽지 않아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평균 임신중단 시기는 평균 6.4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임신 8주 이하는 84.0%, 임신 12주 이하의 경우는 95.3%로 분석돼, 대부분의 임신중단이 임신 12주 이하에서 시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임신을 인지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진 청소년이나, 인지기능 장애 여성 등의 경우에는 초기 임신 중단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5년, 고려대학교에서도 인공임신중절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해당 조사에서도 역시 12주 이내에 임신중지를 한 여성들이 96%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10대의 경우에는 12주 후에 임신중단을 한 비율이 12%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 이사는 “임신중단이 가능한 허용 임신주수 논란은 우리나라 신생아 관리의 현주소가 반영돼야 하므로 관련 의료계와의 긴밀한 논의와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 ‘낙태 시술’ 양심적 거부 외치는 의료인들

이번 낙태죄 폐지 관련해 또 한가지 새로운 문제가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낙태 시술 관련 양심적 거부권을 주장하는 의료인들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헌재 판결 이후 산부인과 의사회는 임신중단을 원치 않는 의사들에게 양심적 진료거부권을 요청하고 있다. 수술 경험이 없거나, 자신의 종교적 신앙에 따라 수술을 원치 않는 의사들도 많아졌다.

현재 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임신중단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때 특정 패널티를 받게 될 것이라며 걱정을 하고 있다. 또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관련 교육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고 이사는 “의사들의 의료서비스 제공 활동이 위축될 경우, 임신중단 접근성에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모색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낙태죄 조항의 개정을 위한 입법과제 관련해서는 여성계·법조계·보건의료당국·의료계가 함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며, 논의의 중심은 언제나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한 임신중단’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 종교계, “‘낙태’ 사회윤리문제 가중시킬 것”

종교계를 대표해 토론에 나선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종교의 문제를 떠나 모든 생명은 잉태된 순간부터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태아의 죽음을 동반하지 않고 임신을 중단할 방법은 없다”며, “살아있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생명 경시를 조장, 윤리적인 무게를 가중시키는 행위”임을 지적했다.

정 신부는 “‘재생산’이라는 표현은 사람을 인격적 존재가 아닌, 단순 생물학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과도 같다”고 전했다. 또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헌재의 결정은 곧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해당 논의는 결국 또다른 사회적 억압을 낳는 것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 입법부의 역할, 법 개정 통한 ‘결자해지’

각계각층의 의견과 사회적 합의를 결과로 도출해야 하는 입법부는 해당 문제와 관련해 포괄적 논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입법심의관은 “낙태죄 법 개정 관련해, ‘판결의 취지’를 잘 고려해 입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와 더불어 “‘임신중절의 비범죄화’에 동의한다”고 밝힌 차 심의관은 “해당 내용의 모든 조치를 시행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선제적 대비가 가능한 부분은 미리부터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측의 긴밀한 협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임신중단의 개념이 여성 관련 의료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임신중단 지원 시책이 모자보건법에 담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수정 변호사(낙태죄 헌법소원청구인 대리인단장).
김수정 변호사(낙태죄 헌법소원청구인 대리인단장).

◇ 헌재 결정, 여성 자율의사 반영한 ‘전인적 결정’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임신한 여성 스스로의 깊은 고민이 담긴 자율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한 ‘전인적 결정’”이라고 표현했다. 신체·심리·사회·경제적 상황 등 여성 자신의 생활영역을 자율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높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김 변호사는 낙태죄를 가리켜 ‘종교적 죄를 형법상의 범죄로 규율하던 중세 이후의 유산’이라 칭하며, 이를 올바르게 극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낙태 허용 기간을 지나치게 짧게 설정하는 것은 오히려 성급한 낙태 결정을 초래하게 되므로, 법 개정 시 임신유지 및 출산 여부 관련해 충분한 숙려기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향후 가장 중요한 입법 방향은 ‘처벌’이 아닌 ‘사회적·제도적 조건의 개선’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강조했다.

임신 중단권은 자유권의 문제를 넘어, 임산부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보장돼야 마땅한 국가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임을 강조한 김 변호사는 “그동안 형벌로써 존치돼 온 낙태죄는 인류에게 전혀 효과적이지도, 위협적이지도 못한 조치”였다며 지적했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그간 국가 정책의 중심에서 시대착오적인 역사를 반복해온 기존의 낙태죄가 올바른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관련 안전한 낙태 보장 시스템이 반드시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그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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