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주의 맛있는 미담(味談)] ‘선주후면’ 평양냉면
[마리아 주의 맛있는 미담(味談)] ‘선주후면’ 평양냉면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9.05.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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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평화. 지난해 8월 개봉해 많은 화제를 남긴 영화 ‘공작’은 현재 직면한 남북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영화였다.

‘공작’에는 대북 공작원 박석영(황정민)과 북측 고위 관계자 리명운(이성민), 정무택(주지훈)이 대북사업을 논의하는 장면에서 이북 음식으로 잘 차려진 식사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담백함이 백미인 평양냉면과 높은 도수의 뱀술을 기울이며 두 주인공이 ‘선주후면’을 즐기는 장면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충돌하는 영화 ‘공작’의 줄거리를 함축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영화 '공작'에서 박석영(황정민)과 리명운(이성민)의 식사장면.
영화 '공작'에서 박석영(황정민)과 리명운(이성민)의 식사장면.

이북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평양냉면

6.25전쟁 이후 실향민 1세대를 통해 남한에 전해진 이북 음식들이 많지만 특히나 평양냉면은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SNS, TV 매체 등에 자주 등장하며 이북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매운 냉면과 함흥냉면 고기집의 후식냉면에 익숙한 이들은 잔뜩 기대를 안고 처음 평양냉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맛도 아니고 저 맛도 아닌 음식을 경상도 사투리로 ‘니 맛도 내 맛도 없다’고 하는데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 딱 그 말이 떠오른다.

시간과 돈이 아까워 메밀면을 한입, 두입 먹다가 차가운 육수를 몇 번 들이키다 보면 ‘무슨 맛인지 몰라도 먹을 만한데?’하며 고개를 갸웃 거리게 된다.

이것이 평양냉면과 첫 만남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지만 이후 두 번, 세 번 만남이 이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평생 ‘평양냉면앓이’를 하게 되는 과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함흥냉면(왼쪽)과 평양냉면.
함흥냉면(왼쪽)과 평양냉면.

한국의 토속문화에 집착으로 보일만큼 강한 애정을 보이며, 한국의 향토문화와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인 백석의 ‘국수’는 평양냉면 본연의 매력을 가장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끊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 백석의 시 ‘국수’ 중 일부

백석의 시에서 알 수 있듯 본디 평양냉면의 국물은 겨울에는 동치미를 쓰고, 여름에는 고기육수를 썼으며, 보통은 닭과 꿩으로 뽑은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었다고 한다. 또한 면은 전분을 섞지 않은 메밀 100%로만 만들어졌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 장소였던 옥류관의 평양냉면도 전분이 들어가고, 냉면의 색도 검은 빛이며, 식소다가 들어갔다고 하니 최초에 태생한 평양냉면과 같다고 볼 수는 없겠다.

또한 서울에 있는 평양냉면집의 대부분은 쇠고기 등 다양한 고기 육수를 쓰고 전분과 메밀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이렇게 남과 북의 평양냉면은 시대가 변하면서 식재료의 공급, 조리의 편의성, 냉장고와 조미료의 등장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으로 차츰 진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평양 지역의 맛이 계승되어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평양냉면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는 남북정상의 모습(왼쪽)과 평양 옥류관의 모습.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고 있는 남북정상의 모습(왼쪽)과 평양 옥류관의 모습.

평양냉면의 계보를 잇는 한국의 평양냉면집

한국의 평양냉면을 대표하는 서울의 의정부 평양면옥은 1.4후퇴 때 피란 온 평양 출신의 실향민이 연천군 전곡에 개업한 작은 냉면집이었다.

이 집이 실향민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1976년 지금의 의정부 자리로 옮겨왔다. 이때부터 2대째 평양면옥을 운영하고 있으며, 첫째 딸은 서울 중구 필동에 ‘필동면옥’을, 둘째 딸은 을지로에서 ‘을지면옥’으로 문을 열어 평양냉면계의 로열패밀리라고 불리는 계보가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우래옥’ ‘을밀대’ 등 지금의 유명 평양냉면 전문점들이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봉피양’ ‘능라도’ ‘피양옥’ 등 신흥 강호 평양냉면 집들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평양냉면의 인기에 힘입어 어복쟁반, 이북식 만두와 녹두전까지 더욱 다양한 북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되면서 한층 더 친숙해졌다.

한국 대표 평양냉면집 음식들.
한국 대표 평양냉면집 음식들.

‘대미필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담백하다

이북음식의 가장 큰 매력은 오묘하고 은은하게 다가와서 더 길게 느껴지는 여운과 억지스런 강요 없이 맛의 여백을 채우고, 공(功)은 음식을 먹는 이의 몫으로 돌리는 사려 깊음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들을 써놓은 ‘평양냉면 백서’들이 한가득이다.

필자에게 평양냉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단 한 가지 방법을 꼽으라면 영화 ‘공작’의 한 장면처럼 술 한 잔 기울이고 냉면을 먹는다는 의미의 ‘선주후면’이 아닐까?

 

 

Who's 마리아 주

△푸드스타일리스트 △레스토랑 컨설팅&푸드스타일링 ‘푸드바코드(Foodbarcode)' 대표 △푸드코디네이터, 일식·중식·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 △서울국제푸드앤테이블웨어 박람회 ’테이블세팅‘ 개인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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