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판결, “여전히 살아있는 법, 풀어야 할 숙제들‘
낙태죄 위헌 판결, “여전히 살아있는 법, 풀어야 할 숙제들‘
  • 김은교 기자
  • 승인 2019.04.24 14: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쟁점 사안 ‘낙태가능시점’, 임신 14주? or 22주?
발의된 법안 “결정권 보장 vs 낙태죄 존치”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1953년 처음 형법에 낙태죄 관련 규정이 제정된 이후 66년만에 얻은 ‘위헌’ 결론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인권 카오스’ 상태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1항)’ 관련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현재 사회 곳곳에서는 다양한 주장과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1항)’ 관련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1항)’ 관련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오는 12월31일까지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태죄는 사실상 폐지된다.

◇ ‘낙태’는 ‘죄’? ‘낙태죄’가 ‘죄’?

현재 각계의 주장은 2가지로 나뉜다. ‘낙태’를 생명경시행위로 결론지어 ‘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과 여성의 행복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기존의 ‘낙태죄’를 ‘죄’로 봐야한다는 시각이다.

결국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어느 것을 더 우위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권 우려 현상이 이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번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현행 낙태죄 관련 조항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다만 낙태죄 규정을 곧바로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일정 기간 유예를 두고 관련 법 조항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르면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 때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따라서 올해 연말까지 낙태죄는 여전히 ‘살아있는 법’으로 기능하게 된다.

◇ 14주? or 22주? 쟁점은 ‘낙태가능시점’

7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론이 난 이번 판결에서는 4명의 재판관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2명이 합헌 의견에 손을 들었다.

단, 이번 결정이 낙태의 무조건 허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임신 22주까지만 낙태가 가능하다고 설정했다. 산모의 마지막 생리기간 첫날을 기점으로 22주 내외부터 태아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는 학계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 7명의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낙태 가능 기준점인 ‘임신초기’ 기준 설정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단순 위헌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안전한 낙태’가 가능한 기간을 14주로 제시했다. 14주 시기에 수행된 낙태가 만삭분만보다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주장의 이유다. 14주 이후부터는 수술방법이 전보다 더욱 복잡해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낙태죄 법률 개정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

낙태죄 법 개정에 이정미 정의당 의원(당 대표)이 발벗고 나섰다.

지난 15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조항 등이 담긴 형법 27장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형법 27장에 나온 ‘낙태의 죄’를 ‘부동의 인공임신중절의 죄’로 바꿔 관련 처벌을 강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존의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을 삭제하게 했다.

특히 모자보건법 개정 발의안에서는 낙태 가능한 ‘임신초기’ 기간이 쟁점이다.

우선 임신 14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만으로도 임신 중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14주에서 22주 사이에는 현행되고 있는 임신중절수술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더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란 임신 유지나 출산 후 양육이 어려운 경우를 가리킨다.

또 임신 22주를 초과한 기간의 임신중절에 한해서는 임신의 지속이나 출산이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인공임신중절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1973년에 마련된 현재의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의 임신부 중 ‘본인 및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준)강간에 따른 임신,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제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3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3월30일 낙태죄 폐지 관련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는 총 65개 단체의 공동 주최로 진행됐으며 여성 스스로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 제도의 각성을 촉구했다. (사진제공=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총23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3월30일 낙태죄 폐지 관련 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는 총 65개 단체의 공동 주최로 진행됐으며 여성 스스로 삶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 제도의 각성을 촉구했다. (사진제공=한국여성단체연합)

◇ 낙태죄 폐지 환영, 개정안발의내용은 아쉬워

정부·국가인권위원회·여성단체·산부인과의사회는 이번 낙태죄 폐지 결정에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먼저 법무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국무조정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후속조치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낙태죄 관련 조항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임을 인정한 데 대해 환영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는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 형법이 예외 사유를 두지 않고 낙태를 전면 금지해 왔으며,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도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여성이 불가피한 사유로 낙태를 선택할 경우,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불법 수술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건강권·생명권도 위협받아 왔음을 안타까워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입장문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법의 틀에 따라 임신 중지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14주를 경과한 임신중지의 경우 태아의 건강이나 성폭력, 근친상간, 사회·경제적 곤란함 등의 위험을 또다시 증명하고 허락받아야한다는 것을 문제의 이유로 들었다. 또 임신 22주 이후에는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 외에는 개인적·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다며 지적했다.

◇ 산부인과 의사 일부, ‘진료 거부권’도 필요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역시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의사회는 “기존의 낙태죄 관련 규정과 모자보건법은 의학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의사와 임산부에게 가혹한 법안”이었음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정확한 지침을 제시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사회는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법령을 폐기하고 여성과 의사의 선택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해당 법령에 따르면 의사가 낙태 관련 의료행위를 할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의 낙태죄 위헌 선고 관련해,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이 찬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낙태 합법화가 시행될 경우, 원치 않는 낙태 시술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의사에게 진료 거부권을 달라는 주장의 글이 올라왔다.

“양심에 따른 개인의 결정을 우선시 해 해당 의사가 진료 현장을 반강제적으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의견이었다. 해당 게시 글은 22일 기준 3만여건의 청원 동의를 얻고 있는 상태다.

◇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 “아빠 책임 묻는 조항도 신설해야”

반면, 낙태죄 폐지를 전면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와 관련해 연합은 “이번 결정이 생명을 보호하는 헌법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한 판단이라 간주하고 정부와 국회에 관련 법 조항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먼저 ‘부성책임강화’를 위해 형법 269조에 ‘낙태교사죄’를 신설하고 친생부가 육아를 책임지도록 하는 가칭 ‘부성책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모자보건법을 모자지원법으로 변경하고 모자보건법 14조를 폐지해 태아와 여성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도 산부인과 의료수가를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등의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인간의 결정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헌재의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태아를 죽이는 낙태 허용은 절대 불가하다”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역시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관련 깊은 유감을 표했다. 천주교 측은 이와 같은 결정이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한 것이며,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을 부당하게 면제토록 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천주교측은 아이와 산모를 보호해야할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고 임산부모를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지난 2017년 2월 낙태죄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1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1항)’에 대한 위헌소원을 내 이달 11일, 관련 판결이 진행된 바 있다.

이날 낙태죄 관련 위헌 소원은 다수결에 따라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으며, 이에 따라 1953년 제정 이후 66년동안 존속돼온 낙태죄 처벌 조항은 개정이 불가피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