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나눠 지급하는 어린이안전지원 “불공평해!”
‘공·사’ 나눠 지급하는 어린이안전지원 “불공평해!”
  • 김은교 기자
  • 승인 2019.04.0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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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원총연합회 “정부관할 기관 지원, 형평성 어긋나” 강력 반발
“예산 없다” 일방향 소통·공공성 없는 ‘공공안전’…대책 ‘공회전’
슬리핑차일드체크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관할 교육기관에만 보조금을 지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지제공=도로교통공단)
슬리핑차일드체크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관할 교육기관에만 보조금을 지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지제공=도로교통공단)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2016년 7월, 광주광역시의 4세 아이가 차량 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아이는 혼자 35도의 폭염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열사병과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돼 버렸다.

2018년 7월에는 동두천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 안에서 4세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승차한 원생 9명 중 8명은 어린이집에 무사히 들어갔지만 나머지 한 아이는 차 안에 7시간 동안 방치돼 있었다. 어느 누구도 아이의 하차와 출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폭염이 쏟아지던 7월의 여름, 아이는 통학버스 안 뜨거운 열기에 질식사했다.

매년 어린아이가 통학차량에 갇혀 사고를 당하고 있다.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말도 안되는 인재다.

◇ ‘슬리핑차일드체크’ 설치, 17일 본격 의무화

지난해 9월20일, 어린이 통학차량에 ‘슬리핑 차일드 체크(Sleeping Child Check)’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6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오는 4월17일 본격 적용된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 의무 장착 대상은 ▲13세 미만 어린이 교육기관 및 시설에서 통학 등을 위해 이용하는 9인승 이상 자동차 ▲어린이통학버스로 구조변경 돼 신고필증을 교부받은 자동차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 벨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동이 꺼지면 차량에 설치된 송신기를 통해 경고음이 울린다. 운전자는 차량 뒤로 이동하며 잔류 인원을 체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차량 뒤편에 설치된 해제 벨을 누르면 경고음이 해제된다.

만약 시간 내 해제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큰 소리의 경고음이 울리고 경광등이 점등된다. 이 때 차량 뒤 해제 버튼을 누르면 경고장치의 작동이 멈춘다.

혹시라도 차량 내부에 아이가 남아있다면 아이는 출입구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큰 소리의 경고음이 울리고 경광등이 점등될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내부에 있는 아이를 확인한 후 해제 버튼을 눌러 경고장치를 중단시키면 된다.

슬리핑 차일드 체크, 즉 ‘어린이 하차 확인 안전장치’에는 벨(Bell)·NFC·비콘(Beacon) 방식의 3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가장 많은 곳에서 선호하는 방식인 ‘벨’은 운전자가 아이들의 하차를 확인한 후 뒷자리 확인 벨을 눌러 경광등 및 경보음을 해제하는 장치다. 설치비는 20~30만원대이지만 유지비가 없다.

NFC 방식은 운전기사가 스마트폰을 차량 단말기에 대면 경보음이 해제되는 장치다. 설치비가 10만원 이하이지만 유지비가 연 10만원 가량 든다.

비콘 방식은 단말기 비콘을 소지한 아이가 통학버스 반경 10m 내 접근해 있는 경우 이것을 감지하는 장치다. 설치비가 40만원 이상이라 가장 비싸다. 유지비 또한 20만원 가까이 든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3월 14일 교육부와 행정안전부가 대전 서구 탄방초등학교에서 개최한 ‘안전한 통학환경 개선을 위한 학교현장 간담회’에서 전체 통학버스에 설치된 ‘어린이 하차확인장치’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관계기관이 협조하여 주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교육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3월 14일 교육부와 행정안전부가 대전 서구 탄방초등학교에서 개최한 ‘안전한 통학환경 개선을 위한 학교현장 간담회’에서 전체 통학버스에 설치된 ‘어린이 하차확인장치’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관계기관이 협조하여 주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교육부)

◇ 학원 차량 운전자에 몰린 장비 비용 부담

정부는 전국 어린이 통학차량에 해당 장비 설치를 유도하기 위해 부처별 지원대상을 나눠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 지급은 유치원·특수학교·초등학교 및 어린이집에 한해 이뤄졌다.

태권도·미술학원 등 민간으로 운영되는 학원에는 별도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민간은 자율적으로 기계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문제는 민간 학원의 경우 슬리핑 차일드 체크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주체가 학원이 아닌 운전 기사라는 점이다. 60~70대가 주 연령대인 기사들에게 평균 20~30만원대의 장비는 급여 대비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서울시의 경우, 시내 어린이집 통학차량 1538대 중 신청 어린이집 차량 전부에 해당하는 1468대에 슬리핑 차일드 체크 장비를 설치한다.

설치 비용은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각 10만원씩 2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이상 비용이 발생할 경우 자치구가 자체 예산으로 부담할 예정이다. 결국 서울시내 어린이집은 슬리핑 차일드 체크 장비를 무료로 설치하게 됐다.

충청남도 서산시 역시 사업비 3120만원을 투입해 관내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슬리핑 차일드 체크 장비를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어린이집 통학차량 156대에 각 20만원씩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 ‘단속을 위한 단속’ 이미 정해진 관리 대상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원차량 운전자들은 단속에 걸리지 않는 한 슬리핑 차일드 체크 장비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보조금 지원을 받는 정부 관할 교육기관들은 애초부터 관리 단속 대상에서 제외시켜도 무방한 것 아니냐며 결국 힘 없는 민간 학원들만 단속 대상에 속한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어린이 안전의 공공성을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예산 책정이 용이하지 않은 민간부문에는 ‘자율’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방치와 차별을 행했다는 것이다.

◇ 학원총연합회 ‘공평한 국가 예산 집행’ 희망

한국학원총연합회는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슬리핑차일드벨 설치를 위한 비용 지원을 촉구했다.

연합회는 기자회견에서 통학차량 운행 기관에 따라 차별을 받고 있다며 어린이 안전문제에까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현재 연합회는 이번 보조금 지급 사태는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 안전을 확보한다는 법의 취지에 역행하는 일이며 법의 형평성을 위배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연합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보조금의 지급이나 비용문제가 아닌, ‘국가 예산 집행의 형평성’ 문제"라고 지적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138조의 2(비용의 지원)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 하차확인장치의 설치·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부처 관할 기관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학원차량은 개인 소유 차량 형태인 지입차 비율 20%, 외부 전세버스 80% 비율로 구성돼 있다. 전세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80%의 운전기사들은 경제적으로 빠듯한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같은 전세버스를 운전해도 유치원과 계약하면 보조금을 받고 학원이랑 계약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현 정책의 아이러니함을 꼬집었다.

또 차량 사고는 미취학 아동인 영·유아에게 주로 발생하는 일인데, 장비 설치 대상을 초등학교 고학년생인 13세 미만 대상 차량에까지 확대한 것은 제도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연합회 관계자는 해당 문제를 줄곧 교육부에 건의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기획재정부에 하차확인장치 보조금 예산 확보를 위한 추경예산 38억원을 신청한 상태라고 밝혔지만, 확정 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7월 경기도 용인시 소재 어린이집을 방문해 통학차량을 직접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보건복지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7월 경기도 용인시 소재 어린이집을 방문해 통학차량을 직접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보건복지부)

◇ 안전문제, 공·사 구분말고 공공성 추구해야

보건복지부는 정책 구성 초기인 지난해 8월 초까지만 해도 전국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대한 장치 지원 비용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못했다. 설치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추상적인 방안만 거론할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제시되기 시작했고 부처가 관할하고 있는 전국 어린이집에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차량 운전기사 중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인원이 다수 존재한 것은 정책 설정의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민간 학원 역시 한달 급여로 빠듯한 삶을 영위하는 어린이 통학차량 운전자들이 많다. 17일 실시되는 좋은 취지의 정책이 단속을 위한 단속의 함정으로 치우치지 않고 더 나은 제도로 나아가는 과정이길 기대해 본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공공 정책이 정부의 일방향적인 소통에 막혀 결국 돌아오지 않는 일부의 메아리를 만들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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