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백성은 군왕(君王)을 버릴 수 있다
[김동철칼럼] 백성은 군왕(君王)을 버릴 수 있다
  • 김동철 주필
  • 승인 2018.11.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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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시구편(鳲鳩篇)이란 왕이 백성을 골고루 사랑해야 된다는 뜻을 뻐꾸기와 비둘기에 비유해서 읊은 시경(詩經, 공자에 의해 편찬된 305편의 시모음)의 편명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기술한 후에 이에 있어야 할 당위, 곧 왕이 백성을 골고루 사랑하고 주인으로 여기는 정치와 세상을 바라고 있다. 그의 말대로, “지극히 천하고 어디에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이 바로 백성들이요(至賤無告者小民也), 높고 무겁기가 산과 같은 것도 또한 백성이다(隆重如山者亦小民也).”

그 옛날 백성은 왕과 권력자가 볼 때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리석은 ‘무지렁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권력자와 백성의 관계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세자가 되면 왕위를 승계 받았고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면 평생 노예가 된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면 금수저를 물고 나오는 것이고 지게꾼의 아들로 태어나면 그에 맞게 빈한(貧寒)하게 살아가야했다.

세종실록에 나온 왕가(王家)에 주는 과전법(科田法)이다. 왕가의 과전법을 제정하기를, “왕의 아들, 왕의 형제, 왕의 백부나 숙부로서 대군(大君)에 봉한 자는 3백 결, 군(君)에 봉한 자는 2백 결, 부마(駙馬)로서 공주의 남편은 2백 50결, 옹주의 남편은 1백 50결이요, 그밖의 종친은 각기 그 과(科)에 의한다.”

왕가 사람들의 그 신분에 따라 논과 밭의 크기가 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을 일궈서 곡식을 수확하는 등의 노동력은 천민(賤民)인 공사노비(公私奴婢)가 담당했다.

광해군의 폐모살제(廢母殺弟, 인목대비를 왕비에서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임)를 탓하고 자신의 지극한 존명사대(尊明事大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심) 정신을 강조한 인조는 반정의 명분을 제공해준 정명공주(선조와 인목대비의 딸, 영창대군의 누이)에게 사은(謝恩)의 뜻으로 8천 76결의 절수(折受)를 내려주었다. 절수란, 벼슬아치가 나라로부터 녹봉(祿俸)으로 토지나 결세(結稅)를 떼어 받는 것이다.

인조는 그 뒤에도 인목대비에게 자신의 효성(孝誠)을 증명하려는 듯 딸 정명공주에게 온갖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기존의 살림집의 증축은 물론이고 수많은 노비와 토지를 하사했다. 심지어 전라도의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등 섬에 있는 땅까지 하사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다. 경상감사 박문수(朴文秀)가 1728년(영조 4년)에 ‘영안위방(永安尉房 정명공주를 가리킴)이 경상도 내에서 절수 받은 토지가 8천 76결이나 됩니다’라고 보고한 대목이 있다. 8천 76결을 지금의 평수로 환산하면 약 5천만 평에 달한다. 당시 한양 도성의 면적을 약 600만 평으로 잡는다면 어마어마한 면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백성들의 생활은 어땠을까. 명종 때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나온 글이다.

모든 원(員, 수령)이 된 자는 으레 민가의 과일나무를 일일이 적어두고 그 열매를 거두어들이는데, 가혹하게 하는 자는 그해 흉년이 든 것도 상관하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데에 반드시 그 수효를 채웠으므로 백성들이 그것을 괴롭게 여겨 그 나무를 베어버리는 자가 생겼다.

어잠부(魚潜夫)가 김해에 살 때에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는 사람을 보고 부(賦)를 지었다.

황금자번(黃金子蘩) 황금 같은 열매가 많이 달리니
이사기향(吏肆其饗) 벼슬아치가 토색질을 멋대로 하여
증과배징(增顆倍徵) 수량을 늘려 갑절로 거두어들이고
동조편추(動遭鞭捶) 걸핏하면 매질하니
처원주호(妻怨晝護) 아낙은 원망하면서 낮에 지키고
아제야수(兒啼夜守) 어린 것은 울면서 밤에 지킨다
자개매숭(玆皆梅崇) 이것이 다 매화 탓이니
시위우물(是爲尤物) 매화가 근심거리가 되었구나

평상시 나라의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의 공물, 납세부담을 덜어주려는 애민(愛民)정책이 사실상 부재한 조선시대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은 꿈속의 이야기였다. 특히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貢納) 등 과중한 세금으로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 빨아먹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염증을 느낀 백성들은 애초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정심이 없었다.

서민구엄억(西民久掩抑) 서쪽 지방 백성들 오랜 세월 억압받아
십세애잠신(十世閡簪紳) 십세토록 벼슬 한 장 없었네
외모수원공(外貌雖愿恭) 겉으로야 공손한 체하지만
복중상윤균(腹中常輪囷)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었네
칠치석식국(漆齒昔食國) 옛날에 일본이 나라 삼키려 했을 때
의병기준준(義兵起踆踆)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서민도수수(西民獨袖手) 서쪽 백성들이 수수방관했음은
득반량유인(得反諒有因) 참으로 그럴만한 이유 있었네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하일대주(夏日對酒)’, 즉 ‘여름날 술을 마시며 읊은 시’에 나오는데 잘못 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통분과 한탄을 읊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던 가장 큰 병폐는 바로 신분 차별과 지역 차별이었다.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까지 서북 3도 백성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천대받아, 중앙의 관계에 진출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런 사회적 질곡(桎梏)을 해결하려는 간절한 뜻이 담겼다.

무릇 백성이란 누구이던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에서 백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유교국가에서 백성은 ‘왕의 백성’이 아니다. 민심무상(民心無常), 즉 백성들의 마음은 일정함이 없어 절대로 어느 한 곳에 붙박이로 붙어 있지 않는다. 백성들의 마음은 유혜지회(惟惠之懷)라 해서, 오로지 은혜롭게 정치하고 혜택을 베푸는 정책을 펴내는 사람에게 향한다. 그가 어느 민족이든, 그가 어느 나라 누구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백성을 하늘로 생각하라’는 맹자의 민본주의(民本主義)는 상당히 뛰어난 사상이었는데 그것을 어기고 파괴하는 군주에 대해 저항하는 혁명의 주체세력은 항상 중산층이었다. 일단 백성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고 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과 같았다.

1592년 5월 30일 선조가 왜군에 쫓겨 한양 도성을 떠나 파천(播遷)길에 오르자 민심이 이반했다. 분기탱천(奮起撐天)한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왕을 원수(怨讐)로 여겼다.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 기록이다.

“임금의 행차가 성을 나서니 난민들이 맨 먼저 장례원(掌隸院 노비 판결부서)과 형조(刑曹)를 불 질렀다. (중략) 또 내탕고(內帑庫 왕실 개인금고)에 들어가 금과 비단 같은 것을 끌어냈으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불 질러 하나도 남겨두는 것이 없었다. (중략) 모두 왜적이 오기 전에 우리 백성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이로 인해 무수한 역사적인 자료와 더불어 노비문서들도 다 타버렸고 나중에 실록을 기록할 사초(史草)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겨우겨우 여기저기 자료들을 긁어모아 날짜부터 뒤죽박죽인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로 역사가 단절된 듯하다.

오늘날에도 기득권층의 ‘갑(甲)질’ 횡포는 여전하다. 특히 국민의 세금을 가져가면서 민생경제 법안처리에 늑장을 부리는 국회의원들의 ‘무노동 유임금(無勞動 有賃金)’, ‘헬(hell) 조선’에 일정 부문 책임이 있는 재벌의 안하무인 태도, ‘관(官)피아’가 되어버린 고위공직자와 공기업 임원들의 부정부패의식 등에 국민들은 치를 떨며 분노한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 도체찰사 류성룡이 남해안에서 둔전(屯田)을 관리하던 이순신 장군을 찾아온다. 그때 장군은 백성들이 씨를 뿌리고 수확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편지 한 장을 건넨다. 류 대감이 펼쳐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즉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또 다시 기시감(旣視感)의 발현! 어쩜 예나 지금이나 그리 똑같을까.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교양학부 교수
-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운영자문위원장, 석좌교수
- (사)대한민국 해군협회 연구위원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우리가 꼭 한번 만나야 하는 이순신’ ‘국민멘토 이순신 유적답사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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