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비 동결로 ‘문닫는 어린이집’ 상반기 1320곳
누리과정비 동결로 ‘문닫는 어린이집’ 상반기 1320곳
  • 김철훈 기자
  • 승인 2018.10.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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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는 자금난, 보육교사는 저임금…“최저임금·물가 반영 인상 불가피”
정부도 인상 필요성 인정, ‘올해 수준 초과 불가’ 정치권 합의가 걸림돌
9월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3-5세 누리과정비용 6년 동결 대응 정책토론회 모습.
9월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3-5세 누리과정비용 6년 동결 대응 정책토론회 모습.

[베이비타임즈=김철훈 기자] 정부가 9월 초 국회에 제출한 2019년도 예산안에서 누리과정비용을 6년째 동결시키자 보육업계는 거세 반발하며, 규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정책토론회 등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지난달 19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교육위원장)과 최도자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교육위원회)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회장 김용희)와 산하 민간분과위원회(위원장 이재오)가 공동주관한 ‘대한민국 3~5세 누리과정비용 6년 동결 대응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어총 소속 전국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학계, 학부모 대표 등 주최측 추산 2000여 명의 보육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 국회에 집결 "누리과정 비용 현실화하라"
 
이 행사의 명칭은 정책토론회였지만 분위기는 규탄대회에 가까웠다.
 
대회의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은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누리과정 비용 현실화 구호를 연호했다. 또한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토론회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발제에 나선 서원대학교 생활경영학부 영유아보육학과 손지연 교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격차해소를 위한 인상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매년 최저임금과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누리과정 지원비가 동결되는 것은 보육교사에게 저임금을 강제하는 것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누리과정 비용 동결은 어린이집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원율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어린이집은 2017년 1900곳이 폐원한 데 비해 2018년에는 상반기에만 1320곳이 폐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의 차별도 지적됐다. 유치원은 누리과정 운영지원비 7만원 전액을 누리과정 운영에 사용할 수 있다. 교육부 지원을 통해 교사 처우개선비 등을 별도로 받기 때문이다. 반면 어린이집은 이 7만원 안에 담당교사 처우개선비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근로시간 차이도 지적됐다. 손 교수는 "어린이집은 누리과정이 7시 30분~19시 30분인 반면, 유치원은 9시~14시다. 이로 인해 2015년 기준 보육교사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9시간 36분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유치원은 2시 이후 방과후과정이다. 이 방과후과정은 별도 교사를 고용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보조교사를 지원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휴게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교사의 열악한 처우와 부족한 휴게시간 등이 아동학대나 안전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에 이어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서영숙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에서는 한어총 김종필 정책연구소장, 한어총 민간분과위원회 안성숙 부회장, 한국보육진흥원 조용남 보육사업진흥국장, 김순미 보육교사, 한선영 학부모 등이 발표했다.
 
9월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3-5세 누리과정비용 6년 동결 대응 정책토론회에서 한어총 소속 어린이집 원장들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9월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3-5세 누리과정비용 6년 동결 대응 정책토론회에서 한어총 소속 어린이집 원장들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누리과정은 보편적 지원...재정 부담 커"

 
누리과정 비용 현실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6년째 동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예산상의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2018년 예산안’ 합의문을 통해 “2019년 이후 누리과정 지방교육자치단체에 대한 예산지원은 2018년 규모를 초과할 수 없다”고 못박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원식 의원은 "학부모와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8년부터 누리과정 비용을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단가는 동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 백선희 소장도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리과정 비용 인상이 필요성은 있지만 재정상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 소장은 "누리과정은 3~5세 모든 아동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보편적 지원으로서, 누리과정 비용을 1만원만 인상해도 정부의 재정 부담이 매우 커진다"며 "정부가 재정을 확충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리과정 비용 인상의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백 소장은 "상식적으로 몇 년간 동결이 지속된다는 것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누리과정 비용을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누리과정 비용 현실화에 공감하며 누리과정 비용 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사실 각 당은 당초 정부 예산안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우선순위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책예산을 세 가지씩 가지고 있다. 그동안 저는 누리과정을 3번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토론회를 보고 1번으로 올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축사를 통해 “누리과정비용 인상은 꼭 필요한 것”이라며 “이찬열 교육위원장님이 꼭 이뤄주실 거라 믿는다”고 농담 섞인 발언을 했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교육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인구절벽인데도 아이를 보육하고 기르는 데에 국회가 너무 인색했던 것 같다”며 “소중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누리과정 비용 현실화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보건복지위)은 개회사를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올랐는데 누리과정 비용이 인상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며 “누리과정 비용 인상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으면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교육위)은 "누리과정이 당초 계획했던 재정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보육교직원의 처우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것이 보육의 질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 등도 축사를 통해 누리과정 비용 인상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역시 "우리로서는 누리과정 비용 인상을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결국 누리과정 비용 인상 여부는 국회의 예산 심의 결과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지난해 말 여야 3당 합의가 있었던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권병기 보육정책과장은 "어린이집 현장을 많이 다녀보기 때문에 어린이집이 유치원에 비해 특히 더 운영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간 차별 해소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어총 김용희 회장은 “지난 6년간 담임교사 수당을 공제하고 있는 어린이집의 운영비 7만원이 격차의 출발점"이라며 "누리과정 담임교사 수당은 복지부가 예산 편성 및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령과 소관부처가 이원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누리과정비용 재정편성의 권한을 교육부로 정한 것이 문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론에 참석한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 역시 "누리과정 비용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유치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해 소관업무 분야인 유치원의 입장을 배제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학부모 대표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화장실도 맘편히 못가는 보육교사들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것 같아 학부모로서 죄송스럽다"며 "누리과정이 보육 및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만큼 정부는 현 상황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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