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4차 산업혁명-한스 모라벡의 역설
[정경석의 길] 4차 산업혁명-한스 모라벡의 역설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8.09.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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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석 4차산업혁명 강사·여행작가
정경석 4차산업혁명 강사·여행작가

1970년대에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다(Hard problems are easy and easy problems are hard.)’고 미국의 로봇 공학자인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은 정의를 내렸다.

이 표현으로 그는 컴퓨터와 인간의 능력 차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단순한 이 정의가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하는 삶의 일상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모라벡의 역설을 실례로 들어 보자. 우선 로봇이 잘하는 일을 열거해 보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열심히 또박또박 써도 마음이 급한 탓에 늘 내 글씨는 엉망이었다. 지금 역시 내 글씨는 삐뚤삐뚤하다.

그러다가 직장에 입사해 문서작성을 위해 타자기를 배워야만 했다. 내가 엉망으로 쓴 글씨는 여직원의 손길을 거치면 책의 활자같이 명료한 모습으로 하얀 종이에 출판되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웬만한 글 쓰는 일은 열심히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겨 해결했다.

기계는 내가 글을 예쁘게 쓰지 못하는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타자기 도움 없이도 내가 말로만 해도 저절로 기계가 알아서 글을 다양한 서체로 써 준다.

수학이 싫었다. 문제를 풀지 못하면 늘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잣대로 맞아야 했던 어린 시절. 도무지 알 수 없는 공식과 부호들, 특히 공대를 진학하여 수학이 공학으로 넘어갔을 때에는 그야말로 내 머리는 거의 혼돈의 수준이었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늘 하위였고,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했다.

직장을 다니고 몇 년 지나니 부서에 한두 대씩 컴퓨터라는 것이 도입되었다.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EDPS를 배우긴 했지만 오로지 학점을 따기 위해 형식적인 공부만 했었다. 컴퓨터가 일반 사무용으로 전환된 뒤 엑셀이라는 것을 배웠다. 수 없는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해 주니 이젠 수학으로 걱정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영어를 못했었다. 특히 문법은 더욱 못했다. 입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채점하기 쉬운 문법이지 회화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영어 회화를 배웠다. 영어회화를 배우니 다른 언어도 호기심이 생겨 마구 배웠다.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

사람들과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직장 생활 내내 영어로 해외출장 다니고 영어를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통역도 해주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미노 800km를 걸으며 약간의 스페인어 회화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구글 번역어플이 생긴 뒤로는 하다못해 평생 영어라고는 배워 본 적 없는 할머니들도 이 어플 사용법을 알려 주니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혼자서도 불편 없이 해외여행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한국말을 이야기하면 알아서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해서 글과 유창한 현지 대화로 전해 준다.

이외에도 로봇은 인간이 감히 도전하기 힘든 일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일은 로봇이 아무리 진화해도 하지 못할 것이다.

오래 전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우리 일곱 형제들 입맛에 맞게 요리를 잘하셨다. 특히 인천이 고향이라 간장게장의 맛이 일품이었다. 돌아가신 지 오래 되셨지만 아직도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운 누님이나 시댁살이를 한 형수님들은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그 맛을 재현해서 가끔 형제들이 모일 때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간장게장을 먹는다.

아무리 컴퓨터가 더 발전해고 요리하는 로봇을 만들어 낸다 해도 결코 내 입에 맞는 어머니 느낌의 요리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다른 해보다 더 폭염이 드센 2018년 여름, 올해 러시아는 월드컵으로 더 뜨거웠다. 늘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골문 앞에서 날아온 공에 감각적으로 발을 대서 골인시키는 음바페의 순발력과 프리킥으로 기가 막히게 골문의 모서리에 공을 차 넣는 호날두, 본능적으로 팔과 다리를 뻗어 공을 막아내는 골키퍼 조현우 등등 넓은 경기장에서 공을 날려 보내는 자기 편 선수들의 의중을 알고 미리 낙하지점에 뛰어가서 공을 낚아채고 드리블하는 선수들이 놀랍기만 하다.

로봇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로봇이 축구경기를 하더라도 이런 역동적인 게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카메라를 생산하는데 많은 투자를 했다. 이유는 바로 카메라의 눈인 렌즈 때문이다. 광학렌즈는 단순히 크게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 렌즈를 통해 우주를 볼 수 있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카메라의 역할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최첨단의 고성능 렌즈를 장착한 로봇이라도 사람의 눈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랑, 갈망, 그리움, 슬픔, 기쁨, 행복 등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집에 로봇청소기를 구입했는데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 버튼만 누르면 로봇이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알아서 청소해주니 더운 여름에 땀 흘리지 않고 집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며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봇청소기가 사고를 쳐 버렸다. 세탁을 위해 구석에 쌓아 놓은 양복을 로봇이 씹어 먹어 수선이 불가능할 정도가 돼 로봇청소기 가격만큼이나 비싼 양복 한 벌이 날아가 버렸고, 아끼던 와이셔츠 한 장도 너덜너덜해졌다. 몽둥이를 들고 로봇을 다그치면 그게 양복이나 셔츠인줄 몰랐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래도 두들겨 패고 싶다.

이처럼 로봇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의 발명품들이 잘하는 일은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고, 인간이 오감, 육감 및 직관을 동원해서 배우지 않고 본능적으로 잘하는 일은 아무리 놀랄만한 기능을 가진 로봇이 있어도 인간을 백퍼센트 만족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결국 미래는 인간과 로봇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공존하는 삶이 될 것이다.

 

<정경석 프로필>
- 4차 산업혁명 강사, 여행작가, 교보생명 시니어FP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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