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씨앗이니?
너는 어떤 씨앗이니?
  • 주선영
  • 승인 2013.07.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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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에 향기를 퍼뜨리는 수수꽃다리,
따가운 햇살에도 퍼붓는 비에도 지지 않는 봉숭아,
누구라도 마주보며 빙긋 웃어 주는 접시꽃…….
나는 어떤 꽃을 품은 씨앗일까?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우며...
몇 년 전 최숙희 작가는 산비탈에 지어진 건물에 아늑한 작업실을 마련했다. 건물 뒤편에 손바닥만 한 빈 땅이 있어 주인에게 농사를 지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주인은 선선히 허락을 해 주었고, 작가는 초짜 농사꾼답게 욕심껏 갖가지 씨앗을 뿌렸다. 나중에는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시간이 흘러 씨앗을 뿌린 자리에서 자그마한 떡잎들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밀었다. 새싹들은 앞 다투어 줄기를 뻗고 잎을 내밀며 손바닥만 한 공간 안에서 제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작가는 자라나는 새싹들을 지켜보며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이 녀석들이 봉숭아, 나팔꽃, 채송화, 분꽃 들을 피워 낼까 조바심이 났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사계절 내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몸을 낮추어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태주 시인이 널리 알려진 시 ‘풀꽃’에서 노래했듯,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이제 작가는 손바닥만 한 텃밭에 직접 심은 꽃들뿐만 아니라 지천에 널린 자그마한 풀꽃부터 거리의 화단에 심어 놓은 팬지나 국화 같은 화려한 꽃들까지 온갖 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꽃들은 모두 제각각이라 조그마한 꽃, 커다란 꽃, 소박한 꽃, 화려한 꽃, 일찍 피는 꽃, 늦게 피는 꽃…… 저마다 너무도 다른 특징을 지녔다.

작가는 이렇게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게 된 온갖 꽃들을 그림책 속에 담아 보고 싶어졌다. 두 해 전부터 민화 교실에 다니면서 배운 우리 옛 그림의 표현 기법을 사용해서 말이다. 모란이나 연꽃처럼 화려한 꽃은 더욱 화려하게 표현하고, 민들레나 섬꽃마리처럼 작고 가냘픈 꽃은 그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하는 데는 우리 그림의 표현 기법이 참 잘 어울린다.

“너는 꽃을 품은 씨앗이야”
작가는 꽃과 씨앗에 관한 그림책을 준비하면서, 이제 막 대학생이 돼 엄마 품을 떠나려 하는 아들과 도서관이나 초등학교를 방문하면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씨앗’이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비유다. 하지만 이 익숙한 비유에 담긴 소중한 진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작가는 노랫말 같은 글과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소중한 진실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아울러 우리 어른들이 혹시 아이들에게 똑같이 매끈매끈 잘생긴 씨앗이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똑같이 남들보다 튀는 화려한 꽃이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되짚어 보기를 바랐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씨앗에서 태어났습니다. 자그맣고 가냘프고 쪼글쪼글하기까지 했던 생명은 점점 자라나 제가끔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 더러는 심약하고, 더러는 심술궂고, 더러는 늦되기도 하지만, 저마다 놀라우리만치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다양한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간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작가는 세상 모든 씨앗이 지난 아름다운 가능성을 노래하듯 속살속살 들려주다가,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그래, 너도 씨앗이야. 꽃을 품은 씨앗.” 그리고 다시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꽃을 피울래?” 거창한 포부가 담긴 대답을 강요하는 질문이 아니라, 입술을 달싹달싹 작은 소리로 우물쭈물 무언가를 말하려는 아이들을 향해 귀 기울이는 질문이기를 바라면서다.
(최숙희 글, 그림/40쪽/1만1000원/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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