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육아보감] 다산 정약용! 개똥이 고종? ‘예명의 의미’
[홍성민의 육아보감] 다산 정약용! 개똥이 고종? ‘예명의 의미’
  • 이진우 기자
  • 승인 2018.05.15 2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민 교수.
홍성민 교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출생하여 이름을 부여받고 그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죽은 뒤에도 그 이름으로 기억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세대를 넘어서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옛날에는 부모라도 자식의 이름(名)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공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유가(儒家)의 예법이어서 어른이라도 아이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름이 있어도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자 예명으로 ‘아명(兒名)’을 지어 불렀다. 아명을 짓는 법은 아이의 태몽이나 출생 때의 상황 등을 본따서 짓거나 장수(長壽)의 의미로 천하게 작명하는 경우도 보인다.

아이의 이름이 귀하고 좋으면 귀신이 샘을 내어 일찍 데려간다고 믿어 ‘천하게 지어야 장수하고 잘 산다’고 믿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대 상황에서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조선 고종 황제의 아명은 ‘개똥이’다. 개똥이라고 부르다가 좀 더 커서는 장수하라는 뜻으로 ‘명복(命福)’이라고 불렀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다시 이름을 작명하는데 이때에 짓는 이름을 ‘자(字)’라고 부른다. 남자아이는 상투를 틀고 성인식(관례)을 하고, 여자아이는 혼인식 전에 비녀를 꽂아 성인식(계례)을 할 때 이름을 새로 부여받게 된다.

문제는 자가 본이름과 연관되는 뜻으로 작명되거나 훌륭한 선비로 되기 위한 고귀한 뜻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편하게 부르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누구나 부르기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윗사람, 아랫사람, 선후배, 누구나 쉽게 호칭할 수 있는 이름으로 ‘호(號)’와 ‘아호(雅號)’를 작명해 본명 대신 예명으로 불렀다.

한 사람의 아호가 보통 3~4개에서 수십 개나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추사(秋史) 김정희의 아호는 2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수백 개의 예명을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호는 스스로 직접 작명하거나 스승이나 친구가 지어주며 이름 대신 가볍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다.

또한 본이름을 지어놓고도 실제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름처럼 대신 사용하는 것이 호이다. 오늘날의 이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 선생의 아명은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鏞)·송보(頌甫), 호는 삼미(三眉)·다산(茶山)·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으로 불렀으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었다.

다산 선생은 어린아이 시절에 ‘귀농’이라고, 성인이 되어서는 ‘미용’이라고 불렸는데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다산’, ‘삼미’, ‘사암’ 선생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부르는 이름은 다산으로 호칭했고,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경우도 다산으로 적었다. 이쯤 되면 다산을 이름으로 사용했고 다산으로 사인한 거나 마찬가지다.

정약용 선생을 후대사람들은 그냥 ‘정약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정약용’이라고 호칭하면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어서 무식하고 무례한 자로 지탄받을 수 있다. ‘다산’이라고 호칭해야 한다.

말에는 언령(言靈)이 있다. 내뱉은 말에는 언어의 힘이 있는 것이다. 정약용이라는 이름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다산이라는 호가 그를 상징하고 그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호는 하나가 아니라 10개가 넘으니 실제 사용하는 이름이 10종류가 넘는다는 말이 된다.

다산 정약용(왼쪽) 선생과 조선 고종 임금. 사진=위키백과
다산 정약용(왼쪽) 선생과 조선 고종 임금. 사진=위키백과

오늘날 단 하나의 이름을 평생 쓰는 현대인에 비하면 옛사람들이 실제로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개가 되므로 성명학이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사주(四柱)는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사주팔자를 보완하여 이름을 작명하면 개인의 운명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성명학 이론이다.

어릴 때 부르는 이름과 성인이 되어서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이름의 종류도 수십 가지라면 성명이 사주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본이름은 호칭하지도 않았으니 사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설령 본명을 사주에 맞추어 작명하고 돌림자를 쓴다고 해도 본명은 부를 수도 없었고 사용되지도 않았다.

현대인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평생을 산다. 호를 이름 대신 사용하지 못하는 시대의 상황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은 부르기 위해서 만든 사회의 계약된 언어이자 기호이다. 입에서 부를 때, 글로 적을 때 살아서 숨 쉬는 약속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 일부)

 

■ 홍성민 교수는 현재 경기대학교 행정사회복지대학원 동양문화학과 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 미래교육원, 아주대, 서울교육대에 출강하고 있다. 경제단체 및 기업체 특강, 방송사 출연 등 인상분석(관상)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