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산책] 성희롱 모범답안과 펜스룰
[워킹맘산책] 성희롱 모범답안과 펜스룰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8.04.0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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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석 동양노무법인 파트너노무사

문: 커피나 복사 같은 잔심부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답: 한 잔의 커피도 정성껏 타겠습니다.

문: 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 성에 대한 가벼운 말 정도면 신경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받아칠 여유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2014년도 고용노동부 워크넷에 올라온 여성 면접 시 모범답안이다. 당시에도 황당 면접사례라며 이슈가 되었던 부분인데, 과연 4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진 부분이 있을지 우려된다.

직장 내 성희롱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약 4년 전의 황당한 면접사례가 재현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4년 전보다 나아진 점은 있을까? 그나마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MeToo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요즘은 위와 같은 성희롱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MeToo운동의 반작용으로 요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펜스룰(rule)이 그것이다. 펜스룰은 미국 펜스 부통령이 실천하는 “아내 이외의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행동강령(?) 비슷한 본인의 철칙인데, 일부 한국 남성들은 이 펜스룰을 본인도 지켜야 MeToo운동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넘어서 직장에서 적용되는 펜스룰의 양상은 매우 기형적이라 볼 수 있다. 회식자리에 여성을 대동하지 않는다든지, 출장 시 출장직원을 여성은 배제하고 남성으로만 구성한다든지, 채용시에 가급적이면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 위주로 뽑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펜스룰을 극도의 여성기피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문제가 발생하면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MeToo운동이 주목하는 직장 내 성희롱과 사회에 만연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펜스룰의 잣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파악해도 매우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희롱이 발생하는 원인이 여성이니 여성을 발본색원하면 된다.”는 이런 일차원적인 생각을 누가 지지할 수 있을까?

펜스룰이 적용되는 회사의 회식자리를 한번 상상해 보자. 부장, 차장, 과장 등의 고위직이 남성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대리, 사원 급의 직급들이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직장 내 왜곡된 펜스룰의 목적은 달성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부장, 차장, 과장급의 고위직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떨까? 그러한 회사에서 펜스룰이 적용된다면 부장님, 차장님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부장님 회사에서 펜스룰이 적용되므로 부장님은 회식자리에 참석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송구합니다.”

펜스룰을 거창하게 비판할 필요가 없다. 일차원적인 접근방식에 대해 고차원적인 비판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MeToo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펜스룰이라는 대응에 있어서는 원색적으로 비판할 필요가 있다.

MeToo운동이 발본색원하고자 하는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는 회사에서 권력을 가지고 여성에 대해 만연해 있었던 성폭력에 대한 관대한 처벌 및 인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펜스룰이라는 왜곡된 방법이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회사에서의 엄중한 처벌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직장문화의 혁신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윤형석 노무사 약력>

- 현 동양노무법인 파트너노무사

- 전 노무법인 길 공인노무사

- 전 재단법인 피플 자문노무사

- 전 한국기독교여자연합회(YWCA) 자문노무사

- 전 강사취업포털 훈장마을 자문노무사

- 케네디리더쉽포럼 수료

- 동국대학교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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