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4차 산업혁명시대 마트 캐셔의 독백
[정경석의 길] 4차 산업혁명시대 마트 캐셔의 독백
  • 김복만
  • 승인 2018.03.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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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작가, 4차산업혁명 강사, 교보생명 시니어FP

 

나는 이 일만 평생 해왔다. 야속하게도 공사판에서 막일하던 남편은 어느날 사고로 일찍 하늘로 가고, 보상금으로 변두리에 작은 집을 장만한 후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는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종일 서서 일하는 업무가 비록 힘들지만 대형마트에서 하는 이 일로 온 가족을 먹여 살렸고 애들도 엄마가 힘든 것을 아는지 큰 말썽 부리지 않고 대학 마치고 멋진 배우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고 있다.

나는 온종일 인근의 마트에서 캐셔 일을 보았다. 종일 서 있는 것은 견뎌낼 수 있어도 가끔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때는 내 잘못이 없어도 고객에게 맞받아 칠 수 없는 형편이기에 참는 일이 가장 서러웠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늘 매니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물론 내 실수이긴 하지만 사람이 기계처럼 늘 정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갖는다. 그런데 이젠 그런 서러움도 행복인 것을 알 때가 왔다.

우리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모두 깨끗한 유니폼을 입고 빠르게 물건을 집어 모니터에 바코드를 읽히면 구매한 상품의 집계서가 저절로 나오고, 고객이 건네주는 카드를 사용하면 굳이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편했었다.

가끔 라벨이 잘못 붙여진 것이 있어도 오랜 동안의 숙련된 감각으로 즉시 잡아내 제대로 수정해 주기도 하는 나는 다른 캐셔들도 알아주는 베테랑 언니였다.

오래 전 모든 상품의 라벨에 가늘고 긴 바코드가 그려질 때부터 직감은 했었지만 이렇게 내가 해 오던 일을 모두 기계가 아니,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해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내 일도 점점 편해진 줄 알았다. 그래도 어차피 계산은 해야 하니 ‘내가 필요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창고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도 시간외수당을 인정받아 짭짤한 보너스로 반찬거리라도 하나 더 사고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집어 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걱정된다.

어느날 대형 마트들이 하루 쉬는 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마트에 출근하니 마트의 천장에 이상한 CCTV 카메라가 설치되고 내가 자랑스럽게 서 있던 계산대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고객들은 대형 공간에 일정하게 종류별로 쌓여진 물건들을 카트에 넣기만 하면 카트에 붙은 작은 모니터에 각각의 금액과 합계가 표시되고 쇼핑을 끝낸 후 카트에 넣은 물건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을 필요 없이 매장을 빠져 나가면 미리 등록된 신용카드로 저절로 계산되니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만 바라보다가 퇴근하곤 했다. 혹시 저 사람들이 계산되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며칠 전부터 회사에서 곧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한 대규모 감원설이 나돌았다. 틀림없이 나 같은 캐셔들을 모두 해고시킬 것이 뻔하다.

배운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는데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국가에서 실업수당을 주긴 하겠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연금도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녀들이 아직 나를 도울 형편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 전부터 이상한 말들이 신문이나 TV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이라는 돈 같지 않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벌었다거나 혹은 시세가 떨어져 송두리째 날렸다거나 혹은 이젠 지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고 떠들 때 나는 투기 같은 것은 하지 않으니 그건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다.

뉴스는 매일매일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떠들썩하는가 싶더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을 수시로 떠들었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이 뭘까? 봐도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단어들만 쏟아내고 있다.​

호기심을 갖고 그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무엇이기에 지금이 4차라고 할까? 대규모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돋보기를 쓰고 작은 글씨를 보니 나도 조금은 알만한 단어들이 나온다.

1차는 기계혁명으로 영국에서 섬유를 손으로 뜨지 않고 방적기계가 나와 많은 사람들이 실직된 시대라 하고
, 2차는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가 세상을 밝히던 시대라 한다. 그리고 3차는 내가 지금 비록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대충 쓰기는 하지만 아직도 서툰 인터넷을 만든 시대를 말한다. 거기까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럼 4차는 뭐야? 지금 유용하게 쓰는 인터넷만 잘 쓰면 되지 또 다른 것이 나왔다고? 화면을 넘기니 이상한 단어들이 보인다. 로봇, 인공지능, 무인자동차, 3D프린터, 빅데이터, 블록체인... 아이고 이거 무슨 단어들이 만화책에서 나오는 것 같나?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단어들이 계속 나온다. 드론, 가상화폐, LBS, IoT, IoB 등등. 도무지 머리가 아파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며칠 전 아들이 내게 이야기했다. “어머니, TV 광고에서 보셨죠? 자동으로 요리방법 알려주는 냉장고 하나 살 거예요. 나중에 그걸로 어머니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릴게요.”

언제부터인가 보험설계사를 하는 아들이 앞으로 이런 직업도 없어질 것을 걱정하던데 주말에 아들에게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 봐야겠다.

<정경석 프로필>

- 4차 산업혁명 강사, 여행작가, 교보생명 시니어FP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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