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까르미나 부라나
[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까르미나 부라나
  • 송지숙
  • 승인 2017.11.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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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80년대 중반,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의 해안도시 제다(Jeddah)에서 건설현장의 소장을 1년 넘게 맡았다. 그곳은 서방세계와 폐쇄된 중동의 유럽이라 할 만큼 중부지역이나 서부지역에 비해 거리 모습이나 문화가 사뭇 달랐고 서구적이었다. 그렇기에 여느 외국의 큰 도시에 있을만한 큰 음반가게가 시내에 있었다.

당시 같은 직장의 상관이 클래식 음악을 참 좋아했기에 포크송이나 팝송 그리고 교회 찬양만을 즐기던 나도 그분을 통해 클래식 마니아가 되었다. 다른 도시의 현장에 있었던 그분은 제다에 출장 오면 클래식 음반을 골라 수집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덕분에 나도 그분을 따라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사우디의 음반가게는 음반을 포장해 놓지 않아 늘 원하는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들어 보고 살 수 있어 좋은 음반을 고를 수 있었다. 특히 고음악에 관련된 많은 종교음악 합창곡들을 구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뽑아 든 음반 한 장. 1930년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독일 작곡가 ‘칼 오르프’의 곡인 ‘까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음반을 꺼내 CDP에 올려놓으니 첫 곡인 ‘O, FORTUNA(오, 운명의 신이여)’의 첫 마디부터 들리는 웅장한 합창 소리에 그만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즉시 음반을 구입했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그 곡에 푹 빠져 듣고 또 들었다. 

까르미나(CARMINA)라는 말은 ‘까르멘(CARMEN, 라틴어로 ‘노래’라는 뜻)의 복수형이고 부라나 (BURANA)는 ‘보이렌(BEUREN)’의 라틴어 이름이다. 즉 ‘까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시가집(詩歌集)’ - SONG OF BEUREN - 이란 뜻이다.

이 시가집은 1803년 독일 뮌헨 남쪽으로 수 킬로 떨어진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크 보이렌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었기에 ‘까르미나 부라나’란 이름이 붙었다. 유랑승이나 음유시인에 의한 지어진 세속의 시가집으로 13세기∼14세기에 걸쳐 라틴어로 써졌다.

첫 번째 곡 ‘O, FORTUNA’는 도입부에서부터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타악기와 금관악기의 포효, 그리고 뒤따라 이어지는 웅장한 혼성합창으로 그 엄청난 스케일에 듣는 이들이 이 부분을 오래 기억한다.

음반을 구입하고 약 10년 뒤인 90년대 중반, 나는 그 해도 예외 없이 출장으로 멕시코를 가까운 일본 가듯이 자주 다녀야 했다. 한번 가면 일주일은 보통이고 때론 보름이나 3주정도 체류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전 세계 어느 지역을 출장가면 도착하는 즉시 늘 호텔에 비치된 지역 신문을 뒤적거려 평일 저녁이나 주말의 문화 활동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마침 신문에 멕시코 국립대학 내에서 ‘까르미나 부라나’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에 스크랩해 주머니에 슬쩍 넣어 두었다.

주말이 되어 나는 호텔을 혼자 나와 사전에 지사장 친구를 통해 국립대학으로 가는 방법을 물어 알게 된 전철을 타고 멕시코 국립대학을 찾아갔다. 도착 후 공연 전까지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 다른 홀에서 열리는 재즈콘서트를 본 후 다시 공연장을 찾아가니 표가 매진돼 입장이 어렵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무대 뒤에 서서라도 보겠다고 사정해 겨우 들어간 공연장에는 이제 막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늘 나를 설레게 하는 첫 곡 ‘O, FORTUNA’ 합창이 강렬한 팀파니의 첫 박자와 함께 힘차게 터져 나왔다. 대학연합합창단이라 단원들이 아주 젊었기에 그렇게 힘찬 소리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원들 중 유난히 내 시선을 끈 사람은 대머리 여학생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삭발하고 다니는지는 몰라도 악보를 모두 외우고 노래하는 듯 지휘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아주 야무졌다. 합창을 들으면 늘 단원들의 표정을 보는 편인데, 아직도 그 대머리 여학생의 모습과 진지함이 또렷이 기억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편화된 SNS에 내 아이디는 ‘까르미나’였고 카페의 오프모임에서 친구들에게 아이디의 뜻을 알려 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좋아하는 나를 이해했다. 

‘O, FORTUNA’은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모 자동차회사와 스포츠 브랜드 그리고 스마트폰 제조회사의 신상품 CF음악이나 ‘엑스칼리버’,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의 삽입곡으로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도 국내의 유명합창단들이 즐겨 연주하고, 이 곡은 종종 발레 무용과 함께 스케일이 큰 공연이 되기도 한다. 

오, 운명이여 / 늘 변하는 달과 같이 솟아오르다가 기우는 그대 운명이여 /
얄궂은 운명은 매우 가혹하게 / 때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한다.
우리의 욕망을 희롱하고 / 얼음과 같이 녹고 마는 권력과 빈곤을 주기도 한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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