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Mrs. Robinson
[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Mrs. Robinson
  • 송지숙
  • 승인 2017.09.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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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1989년, 쉽게 갈 수 없는 곳인 파키스탄의 대도시 카라치에 신규시장 개척을 위해 혼자 출장을 가야 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인접해 있는 ‘청정한 나라’라는 뜻의 이슬람 국가이다. 대도시로서는 보기에도 작은 위성 도시 같은 카라치의 지나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전화로 예약한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 정류장 표시를 따라 가는데 키가 작고 남루한 옷차림의 꼬마가 내 캐리어를 들어주겠다는 듯 막무가내로 잡아당겼다. 보통 이런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 성격이라 싫다고 해도 억지를 부렸다.

결국 내가 끌고 가도 되는 캐리어를 작은 체구의 아이가 번쩍 들어 어깨에 이고 앞서 가기에 택시 타는 곳으로 가자했더니 내게 호텔 이름을 묻고는 택시 정류장이 아닌 호텔 셔틀버스 팻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보통 팁으로 1불만 주면 되는데 지갑을 뒤져 보니 5불짜리 밖에 없어 아깝지만 통째로 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나 또한 택시를 타지 않았으니 출장비를 절약한 셈이었다.

외국인들이 대개 묵는 쉐라톤 호텔에 체크인한 후 특별히 다음날 업무를 위해 미리 준비할 작업이 없었고, 호텔방의 TV도 볼 것이 없어 로비에 나와 음료수 한 잔 주문하고 오가는 손님들을 보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로비에는 필리핀 사람들로 보이는 3인조 밴드가 공연하고 있었는데 주로 귀에 익은 미국 팝송을 연주했다. 아랍권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기에 중동 지역 어디를 가던 이런 곳에서는 주로 필리핀 밴드들이 그 역할을 도맡아 한다. 

거의 손님 없는 카페 로비에서 나 혼자만을 위한 음악을 즐기고 있는 그 때, 바로 옆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키가 훤칠하며 잘 생기긴 KLM 항공사 기장과 아름다운 갈색머리칼의 스튜어디스들이 정복을 입고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아마 네덜란드에서 카라치에 도착해 호텔에서 하루나 이틀 묵다가 다시 귀국편 항공기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가기 위해 로비에서 전용 버스를 기다리려 나온 것 같았다. 

그렇게 로비에서 밴드가 노래를 이어가던 중 미국의 유명한 팝가수인 ‘사이먼 앤 카펑클’이 부른 ‘미세스 로빈슨(Mrs. Robinson)’의 경쾌한 멜로디가 나오니, 앉아서 리듬을 타던 KLM 스튜어디스들이 갑자기 흥에 못 견디겠는지 남녀 몇 명이 일어서더니 서로 짝을 맞추어 지르박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음악에 호흡을 많이 맞추어 본 듯 그들의 스텝이나 터닝은 모두 자연스러웠다. 

연주를 하는 밴드도, 구경하는 나도 즐거웠고 춤을 추는 스튜어디스들과 그들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호텔 직원들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원래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호텔로비 같은 곳에  늘 종교경찰이 있어 혹시나 있을 풍기 문란한 모습을 제지하지만, 쉐라톤 호텔은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곳이다 보니 그랬던 것인지 그 날은 아무도 제지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호텔 로비에서 흥에 겨워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다가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오니 모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캐리어를 끌고 총총히 사라져갔고, 나는 그들이 떠난 로비에 혼자 오랫동안 앉아 나머지 음악들을 즐겼다. 

나는 그날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본 것 같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역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가서 노래는 잘하는데 춤에는 참 어설픈 편이다. 특히 다 같이 추는 춤이라면 해 본적이 없으니 그저 혼자 막춤으로 몸만 흔들곤 한다. 

이때 그들의 사교댄스를 보고 절실히 느낀 것이 전 세계적으로 추는 사교댄스들은 배워 놓을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멕시코를 가서는 누구든지 살사를 추는 모습이 부러웠었고, 스페인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몸에 밴 듯 즐기는 플라맹고와 남미 사람들이 빙글 빙글 돌아가며 추는 탱고가 참 보기 좋았다.

항공사 직원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준 곡 ‘미세스 로빈슨’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졸업’을 위해 특별한 작곡한 음악으로 내가 어릴 때 이 노래가 거의 매일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칸추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고 이들의 노래는 지금까지 명곡으로 남아 있다. The Boxer, Sound of Silence, Bridge over Troubled Water, El Condor Pasa 등등. 내가 좋아하는 트레킹 영화인 미국의 서부지역 PCT를 걷는 ‘Wild’의 배경음악도 이들이 부른 ‘El Condor Pasa’였다.

여하튼 호텔에서 첫날을 보낸 후 다음날부터 몇 군데 업체와 상담을 하던 중 현지에서 만난 젊잖게 생긴 회사 대표가 상담 후 내가 저녁에 아무 스케줄이 없다는 것을 듣고 나를 친척의 결혼식에 초대했다. 결혼식은 밤에 흥겨운 아랍 음악이 울리는 야외 마당에서 진행됐다.

신랑 신부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고정된 한 자리에 앉은 채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사진을 같이 찍었다. 나도 같이 간 사람의 권유로 신랑신부의 옆에 같이 앉아 사진을 찍었고 그들은 이방인인 내게 순박한 미소를 전해 주었다. 그리고 마당에서 선 채로 그들이 음식을 손을 사용해서 같이 나누어 먹는 정다운 장면들을 보며 카메라가 없어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해외 출장 시 문득 만나는 낯선 문화들이 내겐 삶의 큰 호기심을 키우고 여행을 즐겁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어느 낯선 지역에 출장을 가면 나는 늘 호텔에 놓여 있는 현지신문을 뒤적여 내가 체류하는 기간에 음악회나 축제가 있는지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물론 자주 가는 중동국가에는 그런 음악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현지의 식당에 가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흥겨운 아랍음악들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여행은 그 나라의 전통음악과 전통음식을 같이 즐겨야 제대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명이 같이 다닐 때는 그런 즐거움을 포기할 때가 많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어디를 가도 꼭 한국음식점을 찾아다니기에 현지음식을 즐기는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고, 현지의 풍습을 즐기기보다는 호텔방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해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안전을 위해 숙소에 머무른다는 핑계도 있지만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야 할 세대들에게는 어딜 가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내게는 음악을 찾아다니는 시간들이 즐겁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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