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트레킹 영화 3편
[정경석의 길] 트레킹 영화 3편
  • 송지숙
  • 승인 2017.09.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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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Wild (미국 Pacific Crest Trail, 장 마크 발레 감독, 리즈 위더스푼 주연)

가난하고 폭력적인 아빠와의 유년시절을 보낸 주인공은 젊은 시절 행복하게 지냈던 엄마가 지병으로 죽어가면서도 고통을 이겨가며 자신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사랑에 보답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건강한 남자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미국 서부의 캐나다 국경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약 4,300km의 트레킹에 도전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원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가 ‘WILD’라는 이름으로 펴낸 책을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읽은 뒤 직접 원저자를 찾아가 영화화를 제안하고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힘든 길을 걷는 내내 어머니와의 추억이 오버랩 되며, 투병으로 고통스러웠던 어머니의 인생만큼이나 긴 PCT를 여러 가지 난관을 겪으며 걸어가는 셰릴의 의연한 모습이 대자연의 풍광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준다.

또 셰릴이 트레킹 중 한 남자를 만나 의미 없는 사랑을 나누면서도 홀로 떠나는 긴긴 나그네의 외로움을 잘 나타내고 있고,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는 종착지에서 한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영화 내내 흐르는 남미 음악인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의 가사에 “인간은 땅에 얽매여 가장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네, 가장 슬픈 소리를. 길보다는 숲이 되어야지.”라는 부분처럼 주인공이 슬픈 소리를 내며 길을 걷고, 서서히 숲이 되어가고 있는 내면의 변화가 보이는 아름다운 영화다.

The Way (스페인 Santiago Camino Trail,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감독, 마틴 쉰 주연)

미국사람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미노 중 프랑스길을 많이 찾는 이유 하나가 바로 이 영화의 인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틴 쉰은 미국이름이지만 실제 스페인 태생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그의 아들이 맡았다. 

부모에 반항적인 아들이 산티아고 까미노를 걷다가 그만 피레네 산맥을 등산 중 심한 기상재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 의사 토마스(마틴 쉰)는 아들의 유골을 거두기 위해 스페인을 찾았고 유품인 등산배낭을 보고는 왜 아들이 이 위험한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하는 마음을 헤아리고자 아들 대신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필자가 가본 산티아고 까미노의 프랑스길에는 곳곳에 길을 걷다 사망한 자들을 기리는 십자가들이 많이 보였다. 그 곳은 프랑스길의 첫째 날 필히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 통제가 될 정도로 힘든 코스다.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모두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서슴없이 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주인공은 까미노를 걷는 중 어떤 이는 담배를 끊기 위해, 또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또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같이 걷게 되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곳곳에 아들의 유해를 뿌리며 걷는다.

 


순례자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출발점에 서지만 종주 후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느 순간 당초 목적보다 한 달이 넘는 긴 여정 자체가 중요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론 전 세계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대화하기도 하지만 결국 끝없는 길을 조용히 침묵하며 걸으며 춥고, 덥고, 힘들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워 언제든 체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길을 다 걷고 난 후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도착할 때 대부분 그 시간들이 아름다웠다며 눈물을 펑펑 흘린다. 그리고 대부분 평생 그 곳을 그리며 산다. 

A Walk in the Woods (미국 Appalachian Trail, 켄 콰피스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닉 놀테 주연)

이 영화는 미국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이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약 3,360km의 애팔래치아산맥을 트레킹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빌 브라이슨은 은퇴 후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다가 문득 보인 소개책을 보고 삶속에서 무언가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온갖 위험한 상황을 염려하는 가족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기를 결정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체력도 부족하고 캠핑의 ABC도 모르는데다 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조금 엉뚱한 죽마지우 친구와 같이 떠난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찰랑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맘이 졸여서 못 간다’라는 찬송가도 있듯이 대개 사람들은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을 미리 생각해서 포기해 버린다. 물론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위험들은 부딪힐 때 마다 생각해서 해결하면 된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는 여행 중 귀찮은 사람도 만나고, 폭설, 곰, 불한당을 만났어도 모두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그만두고 싶은 유혹도 물리치고 물에 빠지거나 언덕에서 떨어지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들은 결국 사고로 이 트레킹을 완주하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비록 영화에서 거대한 자연의 멋진 장면들이 부족하고, 다소 코미디류 영화이지만 두려움 없는 장년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배운다. 

필자는 늘 인생에 대한 원칙이 있다.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라는 시조보다 ‘가다가 중지 곧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라는 역설이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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