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칼럼] 5·18 기념식과 정의(Justice)
[김종구칼럼] 5·18 기념식과 정의(Justice)
  • 송지숙
  • 승인 2017.05.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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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구 개인정보보호범국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

 

필자는 경상도 출신이지만 5·18기념식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난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일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 10년만에 어렵사리 정권교체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의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져다 주는 기쁨 때문일까?

한창 푸르렀던 30대 초반에 그 좋다던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국회로 들어가 제1야당 총재를 모시고 최루탄도 많이 맞았다. ‘5공 군부’는 당시 시위군중 뿐만 아니라 전원 국회의원인 야당 지도부에도 무차별 직격 최루탄을 발사했다.

권인숙양 고문치사 사건이 단초가 된 ‘명동사태’ 때 나도 일하고 있던 유네스코회관 근처에서 직격탄을 맞고 길바닥에 고꾸라졌다.

지켜줘야 할 국민에 대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던 게 당시 5공 군부와 청와대, 안기부, 경찰이었다.

당연히 지켜야 할 헌법정신를 어기고 5·17, 5·18의 진실을 가려온 보수(?) 군부정권은 한 때나마 이미 대한민국 국회가 단죄한대로 “국가반란”, “국민배신” 세력의 편에 섰었던 일을 깊이 반성하고 마땅히 회오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필자도 산 증인이다. 당시 엄혹한 언론통제로 인해 신문과 방송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던, 일반 국민들이 모르고 있었던 광주사태의 참상을 나는 갓 입사한 신문사 조사자료실에서 ‘마이크로필름 판독기(Microfilm Reader)’란 최신 장비를 활용해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한국의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특파원 사진으로 여과없이 전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데모 한번 제대로 안하고 지냈던 나의 청춘기는 이 일로 인하여 오랫동안 ‘어긋난 로드맵’(?)이 되어 버렸다.

만약 내가 그런 필름을 보지 않았더라면.., 2·12 총선 이후 민추협과 신한민주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민주화 진영’에 몸을 담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모를 일이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읊은대로 그건 내게 ‘가지 않은 길’이다. 하여간 5·18기념식이 열렸던 지난 18일은 내게도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지난 5월 10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이어.

모쪼록 앞으로는 우리 대한민국에 정의가 살아 있고 국민이 행복한 좋은 일만 있길 바라 마지 않는다.

‘정의(Justice)’는 언제나 제 힘으론 일어서지 못하고 소수의 희생을 볼모(?)처럼 해서야,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간신히 일어선다.

그 연유는 하늘이 인간의 마음 속에 심어 넣은 '양심(A Bird in One's Bosom,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있는 한 마리의 새)' 때문이다.

그 새에게는 현실의식도, 총칼이나 권력(힘)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다만 언제쯤, 그리고 얼마나 크게 마음껏 울 것인가만 알아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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