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사람과 생명, 성찰, 순례의 길-지리산둘레길
[정경석의 길] 사람과 생명, 성찰, 순례의 길-지리산둘레길
  • 송지숙
  • 승인 2017.05.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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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한때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골짜기 골짜기 숨어 있던 곳, 낮과 밤이 나뉘어 서로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던 곳, 오랜 세월 산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 지방의 감정이 확연히 달라 지역갈등을 빚고 있는 곳, 그러나 산속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마을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는 곳에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져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곳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2010년 이전까지는 대부분 지리산 천왕봉을 등산하기 위한 목적이나 혹은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해 제한된 산길로만 등산객들이 다녔고 특별히 봄에 매화꽃, 철쭉꽃 그리고 산수유 축제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간헐적으로 찾아오긴 했어도 일부 지역에 국한된 행사였다.

그랬던 지리산이 이제 기존의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산과 산을 연결해주는 길을 찾아 지리산 구석구석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수 있도록 개발하여 지리산둘레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지만 원래 이 길은 오래 전부터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 주민들이 등에 짐을 지고 혹은 가축을 데리고 다니고 농기구를 운전하며 다니며 농업과 상업활동을 하던 곳으로 모두 힘들게 살던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다.

오랜 전쟁으로 황폐되었던 산이 많은 세월동안 사람들과 풀과 나무들이 자연과 생명을 가진 곤충과 동물들의 도움으로 숲을 우거지게 만들었으며 그러한 노력으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거나 혹은 갖가지 이유로 가지고 도시와 떨어져 살고 싶어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고, 그 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리산둘레길은 총 22개 구간으로 거리는 285km에 달한다. 20개의 코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환형(環形)이며 2개의 지선(支線)들이 있다. 국내의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지리산의 산줄기들을 넘는다는 특성으로 일반 트레킹코스에 비하면 난이도가 상급코스에 해당된다. 때로는 해발 900m 정도의 급한 경사로 된 고지대를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북한산 높이 정도의 산행이 요구되는 트레킹이라 전 코스를 걷기 위해선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둘레길이다.

▲ 지리산둘레길 안내표시

 


1코스는 전라북도 남원의 주천에서 걷다가 3코스에서 경상남도 함양의 금계로 넘어가고 15코스 하동의 가탄에서 전라남도의 구례의 송정땅을 밟은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코스 산동에서 남원의 주천으로 돌아간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보니 많은 코스에 농기구들과 승용차들이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길로 되어 있지만 가능한 숲길을 통해 이어지도록 배려를 해 놓았다. 따라서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는 코스에 따라 전북의 남원, 전남의 구례, 경남의 산청, 하동 그리고 함양 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힘든 노력에 비해서 각 코스를 걸을 때마다 보여지는 자연풍광은 그 어느 코스보다 월등하게 좋은 편이다. 특히 높은 곳을 걸을 때 산 아래로 보여지는 작은 마을들의 풍경은 어린 시절의 고향집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포근함을 느낀다. 또한 지역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달라지는 사투리들과 지방마다 다른 음식의 맛으로 매번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곳곳마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으며, 가을이면 온 천지에 가득한 주홍빛의 감나무들과 끝없이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지리산의 본연의 모습을 즐기는 것은 기본이고, 덤으로 넉넉한 마을 사람들의 인정과 산 기슭을 경작한 논밭에서 묵묵히 일을 하시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 고개가 숙여지는 겸손을 배우면서 이 곳이 고된 삶의 순례자의 길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 지리산둘레길 오미-난동 구간의 벚꽃길.

 


둘레길을 걸으면 대개는 민박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집에서 묵게 된다. 또한 식사도 영업용이 아닌 평소 주인이 드시던 시골 반찬과 특별히 요청하면 지방 특산물과 함께 먹을 수 있다. 때로는 시골 부모님댁에 놀러온 것처럼 아궁이에서 나무를 때는 뜨거운 온돌방에서나 혹은 오랜 세월이 지난 흙집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자기도 한다.

지리산은 청정환경지역이라 농부들이 고사리나 산나물들을 많이 재배하고 있어 길을 걸으면 도시인들이 탐을 낼만한 야생나물들이 많지만 이를 마음대로 채취하는 것은 절대 금지하고 있다. 언젠가 둘레길 일부 구간에 유명 방송인들이 둘레길을 찾아 온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일부 구간에만 단체버스를 이용한 지각없는 관광객들이 늘어나 농민들이 농작물 피해를 많이 겪으면서 가능한 단체로 오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각 지역에 있는 둘레길 안내센터(사단법인숲길
055-884-0850)에서 숙소 정보를 제공하고 식사할 장소나 교통편에 대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대개 숙소는 인원에 상관없이 방 하나에 3만원~4만원 정도이고 식사는 개인당 5,000원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또한 홀로 걷는 산길이 걱정되는 사람들은 인터넷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http://jirisantrail.kr)를 통해 진행하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걸을 수도 있다.

▲ 지리산둘레길 전체코스

 


필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하기 위해 몇 년간에 걸쳐 휴가시즌을 이용하거나 혹은 금요일 휴가를 내고 목요일 퇴근 후 버스로 가고자 하는 코스가 시작되는 마을에 밤에 도착해 쏟아질 듯한 별을 즐기고 다음날부터 1박2일이나 2박3일을 걸었다. 거의 대부분을 홀로 걸었으며 가끔 길동무가 있어 같이 걷기도 했다.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 그리고 그 품안에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나 자신이 역사의 큰 수레바퀴의 한 축에 있으며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 평사리마을의 부부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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