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공직자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
[김동철칼럼] 공직자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
  • 김동철
  • 승인 2017.04.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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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대한민국은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의 국가이다.’ 이 말이 과연 망발일까.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처음 사용한 사회학 용어인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라는 말은 원론적으로는 비합리적이며 종교나 도덕적으로 비천하게 여겼던 생산활동을 의미한다.

베버가 이 용어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유럽경제사에서 상인, 금융업자로서 특이한 지위를 누렸던 유대인들의 생활상이었다. 유대인은 스스로를 천민 민족으로 분리시켜 거의 상업과 금융업만을 영위하며 돈을 벌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돈만 아는 ’수전노(守錢奴)’라는 주홍글씨가 달린 끝에 훗날 게르만 민족우월주의자인 히틀러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인종대청소의 희생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돈에 눈이 멀어 패가망신하는 사회지도층들의 면면을 TV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10억을 준다면 감옥이라도 갔다 오겠다’는 고교생 대상 조사결과가 말해주듯 돈은 자신의 명예와 가문의 안위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힘을 가진 권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돈이 자신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여서 문제가 된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계 지도층들에게 ‘나랏돈은 공돈’이라는 인식이 마약처럼 퍼져있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 애를 쓰고 없는 자는 송곳 꽂을 땅 뙤기 하나도 없다. 우리는 최순실 부정스캔들에서 인간 탐욕의 끝이 없음을 극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효과(Matthew effect)’로 설명된다. 개인이나 집단 혹은 지역이 재산, 명예, 지위 등 어떤 한 분야에서 일단 성공을 이루면 그것이 동력이 되어 이후 더 많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이론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리라’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제25장의 구절에 따라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인간의 호리오해(好利惡害)한 본성은 죽지 않는 이상 절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나 분수를 모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용렬함과 우매함에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운명마저도 깜깜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부승치구(負乘致寇)의 비극이다. 부승치구는 어느 날 어찌어찌하여 지체가 높아져 수레에는 올라탔지만, 등에 짐까지 메고 있으니 탐욕한 자임을 알아차린 도적들의 표적이 되고 만다는 뜻이다. 깜냥이 못되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개인의 재앙은 물론이고 나라까지 결딴내는 허망한 일은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나랏돈을 훔치고도 ‘나는 모른다’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자들의 뻔뻔함은 후안무치(厚顔無恥)일 테고, 공부 많이 했다는 교수님들이 나라 망치기에 앞장선 것은 보면 곡학아세(曲學阿世)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땅에 묻어버리겠다’는 조폭질도 서슴지 않았던 고위공직자들의 민낯을 보라. 비록 검은 속은 보이지 않지만, 말과 행동과 태도에서 이미 그의 인간성은 충분히 감지되고도 남는다. 

그런 허접한 자들을 임명한 사람이나, 그런 자들을 소개한 강남 아줌마나 임명권자의 위세를 믿고 호가호위한 자들이나 모두들 100세 안팎으로 살다갈 유한한 생명들이다. 

학창시절 둘째가라면 서러워했을 소년등과(少年登科)한 범생이, 금수저들이 줄줄이 굴비 엮이듯 묶여 법정을 드나드는 모습은 한때 떵떵 거리던 권력이 아침 이슬처럼 무상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가 사상가인 한비(韓非)는 자신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의 ‘망징(亡徵)’ 편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망할 징조를 총 마흔 일곱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한비가 말하는 47가지 망징은 크게 ‘분열’, ‘부패’, ‘무원칙’, ‘안보의식 해이’, ‘가치 혼돈’으로 정리할 수 있다. 예컨대 ‘다른 나라와의 동맹만 믿고 이웃 적을 가볍게 생각해 행동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대목은 안보의식 해이라고 볼 수 있다. 

‘세력가의 천거를 받은 사람은 등용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지사의 국가 공헌은 무시돼 아는 사람만 등용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란 대목은 부패와 무원칙으로 풀이된다. 

또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빚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짜고 이득을 얻어 반역도가 득세해 권력을 잡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란 분석은 부패를 꼬집은 것이다. 먼 앞날을 내다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또 인도 건국의 아버지 간디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이고, 둘째 ‘도덕이 빠진 상업’, 셋째 ‘노력 없는 부(富)’, 넷째 ‘인격이 빠진 교육’, 다섯째 ‘양심이 마비된 쾌락’,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마지막으로 ‘희생이 빠진 종교’이다. 

이 가운데 ‘원칙 없는 정치’를 으뜸가는 죄로 꼽았다. 간디가 설파한 망국론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빗대서 만든 ‘맞춤형 예언’처럼 보여 놀랍다.  

이 대목에서 이순신 장군의 공직관을 들여다본다. 이조판서 이율곡(李栗谷)이 류성룡(柳成龍)에게 “이순신(李舜臣)이 덕수 이씨로 같은 집안인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 평생 장군의 ‘멘토’였던 류성룡 대감이 이순신 장군에게 이조판서를 만나보기 권했을 때 장군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같은 문중으로서 만날 수는 있겠으나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에 있는 한 만날 수 없다.”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때 이순신의 상황은 어땠는가. 1579년 2월 인사업무를 관장하는 훈련원(訓鍊院) 봉사(奉事 종8품)에 재직하고 있을 때(35세) 병조정랑 서익(徐益)이 편법으로 친분이 있는 자를 훈련원 참군(參軍 정7품)으로 승진시키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상관의 인사청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자를 등급을 뛰어넘어 올리면 응당히 승진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공정하지 못한 일이며, 또한 법규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분의 ‘충무공행록’) 

당시 훈련원 관원들은 이순신이 감히 본조에 대항한 일은 앞길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며 심히 우려를 표했다.

그 후 1582년 이순신이 전라도 고흥의 발포만호(종4품)로 재직 중일 때 병조의 서익이 군기경차관(軍器敬差官 군검열단장)으로 내려와 시찰한 결과, 이순신에게 무기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죄로 파직시켰다. 그것은 서익의 분풀이, 복수전이라고 할 수 있다.

파직된 이순신은 이조판서인 이이(李珥)를 만나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장군은 만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 중간에 다리를 놓은 류성룡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늘날 생각해 봐도 이순신은 참 ‘바보짓’을 한 것 같다. 오호 통재(痛哉)라!  

이와 같은 이순신의 인생관은 다음의 시조에서 엿볼 수 있다. 

 장부출세(丈夫出世) 세상에 장부로 태어나
 용즉효사이충(用則效死以忠) 나라에 쓰이면 충성을 다할 것이며
 불용즉경야족의(不用則耕野足矣) 쓰이지 않는다면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약취미권귀(若取媚權貴) 권세와 부귀에 아첨하여
 이절일시지영(以竊一時之榮) 이(권세와 부귀)를 도둑질하여 일시적으로 영화 누리는 것은
 오심치지(吾甚恥之)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는 결벽증과 굽히지 않는 기개로 인해 임진왜란 7년 전쟁 내내, 아니 한평생 온갖 모함과 시기를 받았다. 3번의 파직과 2번의 백의종군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어서 오래 살고 있다. 공직자로서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파이데이아 칼리지 겸임교수
- 문화체육관광부 인생멘토 1기 (부모교육, 청소년상담)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이순신이 다시 쓰는 징비록’ ‘무너진 학교’ ‘밥상머리 부모교육’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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