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
[정경석의 길]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
  • 송지숙
  • 승인 2017.04.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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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남들은 그 길은 고통의 길이라 한다. 그러나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길을 다시 걷기를 소망하고 있다. 한 달 넘게 800km의 길을 걸어야 하는 고된 여정에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빠져 드는 것일까?

그 길은 경치를 보기 원하거나 체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여행을 하는 길이 아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어부였던 야고보가 예수님의 부활 후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사 1:8)’고 말씀하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당시 땅끝인 서바나, 즉 스페인으로 전도여행을 다닌 길이다.

목적지인 스페인 서쪽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야고보가 헤롯왕에게 순교 후 그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교황청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다. 스페인 북쪽의 그 길은 2000년 동안 순례자들이 걸으며 야고보의 뜻을 이어 전도하였으나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에 희생되는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십자군의 템플기사단에 의해 다시 기독교 국가로 회복된 곳이다. 그 길이 없었다면 지금 스페인은 터키처럼 무슬림국가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이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천받은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자의 길. 적어도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길을 가봐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기에 검색해 보니 한 장의 사진이 보였다. 아주 먼 곳에 있는 마을 하나. 그리고 그 곳으로 가는 들판길에 배낭을 멘 두 사람의 젊은이. 문득 나도 그 곳에 있고 싶어 졌고 꿈을 가졌다. 필시 내가 조만간 저 길에 있으리라.

2016년 3월 말에 은퇴 후 즉시 장기간의 여행을 위한 건강체크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관절이나 허리도 아프고 고혈압도 있으니 가능한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지만, 그것은 단지 권장사항일 뿐, 내 의지는 그 곳에 필히 가야 한다고 강권하고 있으니 ‘만약’이나 ‘혹시’라는 단어는 당분간 장롱 속에 접어 두기로 했다. 이때 포기했다면 두고 두고 후회했을 것 같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4월 19일부터 산티아고 까미노 여행을 시작하는 파리와 스페인의 국경도시인 생장에서 시작하여 나폴레옹군이 넘었다고 하는 ‘프랑스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약 해발 1,500m의 피레네산맥을 넘는 것은 평소 등반을 자주 하지 않는 내게는 커다란 시련이었다.

 


첫날 산을 넘으며 이겨 낸 고통은 이어지는 긴 여정과 높은 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려운 결정도 시작만 하면 되는 것인데 단지 시작 하기가 두려워 주저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처음 며칠 동안은 하루 23~24km를 걷고 내 발이 까미노 길에 익숙한 뒤부터는 하루 30km 이상 걷는 일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으며 출발 후 10일 동안은 근저족막염으로 인한 발바닥 통증은 2시간 마다 나를 멈추게 했고 그 통증이 사라질 즈음엔 다시 무릎의 통증이 시작되어 나를 힘들게 했으나 ‘몸이 나를 힘들게 해도 나는 기필코 해낼 거야’라는 다짐은 결국 끝까지 나를 버티게 했다.

힘들게 하는 것은 체력 뿐만이 아니었다. 10일 동안 연속적으로 내리는 빗속을 걷기에 지치고 200km의 평지인 메세타평원에서는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 곳을 걸으며 중간중간 탈진하여 쓰러져 운명을 다한 순례자들을 위해 길가에 세워진 추모십자가는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두려울 때도 있었다.

높은 산을 넘거나 까마득하게 보이는 지평선을 향해 긴 길을 걷다 보니 외롭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같이 길을 걷는 낯선 순례자들의 반가운 인사와 매일 길에서 만나는 동병상련의 전 세계인들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는 내가 늘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그런 고통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물집 때문에 절뚝거리며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의 모습과 장애인 혹은 신체가 불편한 사람 또는 나이가 도저히 걸을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걷는 모습에서 늘 경건함을 느꼈다.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길에서는 수많은 십자가들과 성당들을 만날 수 있다. 십자가의 고난은 길에서 시작되었고 그 고난은 마을마다 몇 백 년 전에 세워진 고딕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성당에서 경건하게 미사를 드리며 위로와 축복을 받고 하루를 숙박하며 심신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스페인어로 알베르게라 불리는 게스트하우스는 매일 저녁 전세계인들의 축제장소였다. 열악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은 서로 도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픈 곳이 있으면 가진 약품들을 나누어 주며 치료해 주고, 맛있는 스페인 와인과 함께 까미노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길은 편하게 걸을 수도 있다. 적어도 10kg이 넘는 짐을 매일 동키서비스를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미리 보내거나, 걷다가 힘들면 중간의 카페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음 목적지로 편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고통을 겪고 싶은 순례자들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기에 어떤 유혹도 다 이겨냈고 걸은 지 31일만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비를 맞으며 걷던 어느 날,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의 끝이 전방의 지평선을 넘어 벌판을 지나 내 몸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내 꿈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고 내 안에 있음을 확인했고, 수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희망의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는 그 길을 걷고 난 후 나는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이 곳이 문득 천국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라는 표제로 책을 발간하였다.

나 어느 날 그 길에 다시 서리라. Buen Camino.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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