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이상한 버릇을 가진 아이들
[김영화칼럼] 이상한 버릇을 가진 아이들
  • 온라인팀
  • 승인 2016.10.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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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저는 어렸을 때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가로수를 보면 수를 세거나 길을 걷다가 금이 난 보도블록을 밟지 않거나 하는 버릇이었습니다. 자라면서 없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가로수를 보면 반복해서 수를 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새롭고 넓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을 회피하고 극복하기 위해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버릇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병원에서 ‘강박증’ 이란 진단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히 7~10세 아이들에게 이런 특이한 행동과 버릇이 생깁니다. 이 시기에 반복적으로 “음음” 소리를 내거나 눈을 지나치게 깜빡이는 버릇이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눈 깜빡이고 얼굴 찡그리는 ‘틱 장애’

야생마를 길들일 때 말을 꽁꽁 묶는 끈을 틱(tic)이라고 하는데 ‘틱 장애(tic disorder)’라는 용어는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이런 병명이 붙게 된 이유는 야생마와 같은 아이들을 길들일 때 마치 끈에 묶인 말이 몸부림치고 발길질하는 것처럼 반항적인 아이들에게 틱이 생긴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틱 증상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비슷한 점이 많아 처음에는 감기 증상이나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코를 훌쩍이거나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찡그리는 증상이 감기 치료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면 틱 장애 증상으로 의심해야 합니다. 대게 부모들은 나쁜 버릇이라며 혼내고 주의를 주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틱 장애로 인한 증상은 대부분 얼굴에서 먼저 시작되어 몸 아래로 진행됩니다. 흔한 증상은 눈을 깜빡이거나 코나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오물거리고 눈을 흘기고 눈알을 굴리는 버릇 등입니다. 이런 버릇이 사라지지 않고 만성이 되면 태권도 동작 같은 발길질이나 한 바퀴 빙 돌기 등 복합적인 행동을 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험담과 성적인 욕설을 내뱉는 ‘뚜렛 증후군’으로 발전되기도 합니다.

▲ 탤런트 이광수씨가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뚜렛증후군’ 환자 역을 연기하고 있다.

 

욕하고 악담하는 ‘뚜렛 증후군’

2014년에 방영된 SBS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는 광수는 ‘뚜렛증후군’환자입니다. 드라마에서 광수의 버릇은 7살 때 처음 시작됐고 나쁜 버릇이라고 군인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습니다. 증상이 없어지지 않아 병원을 찾게 되지만 어머니가 처방을 거부하고 방치해 오다 스스로 뚜렛 증후군을 치료하러 병원을 찾습니다.

성인 뚜렛 장애 환자들은 대게 광수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밟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틱 장애 증상이 없어지지 않는 성인 환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증상을 제때 돌보지 않았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쪽 눈만 깜빡거려 직장에서 ‘여자동료에게 윙크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뚜렛 증후군의 증상인 ‘강박적 외설어증’이 있으면 아무리 참으려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뚱땡이” “대머리”하고 소리 지르게 됩니다. 성인 틱 장애 환자 중에는 아무리 야단쳐도 버릇이 없어지지 않아 부모가 귀신이 씌였다며 굿을 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도발적인 문제 행동 때문에 환자들은 조롱받거나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틱 장애는 뇌기능 장애

뇌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틱 장애’나 ‘뚜렛 증후군’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대뇌 깊숙한 곳에서 운동개시와 복잡한 운동을 조절하는 부위(대뇌 기저핵)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교란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틱 장애’가 시작된 지 일 년이 지나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거나 더 심한 ‘뚜렛 증후군’으로 발전하면 도파민을 조절해주는 약물치료를 1~2년 정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의 반항적인 의도나 나쁜 버릇, 귀신이 쓰인 것이 아니라 뇌의 기능장애가 원인인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2015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틱 장애로 진료받은 환자 1만6,000여 명 중 10대가 가장 많았고(42.5%), 다음으로 10세 미만인 경우가 37.9%였습니다. 하지만 틱 증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나거나 흔한 버릇으로 치부되어 실제 틱 장애를 겪는 소아·청소년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소아·청소년 틱장애의 경우 30% 정도는 1년 이내에 증상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아이의 틱 증상에 대해 놀리거나 벌을 주거나 지적하면 불안해져 오히려 증상이 악화됩니다. 일단 ‘무시’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일과성 틱은 저절로 좋아집다.

증상은 새 학기를 맞는 3월과 9월에 많이 발생하고 어려운 공부나 학교 친구·선생님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악화되기도 합니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을 하는 것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혼자 조용히 보냅니다. 천천히 걷는 운동도 하고 가끔 와인도 한잔하고요.” 뚜렛 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냐는 질문에 제 성인 환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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