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자라지 않는 아이
[김영화칼럼] 자라지 않는 아이
  • 온라인팀
  • 승인 2016.10.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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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중국에서는 이 아이들을 ‘바보 천재’라 불러요.”

제가 서울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 전임의로 재직 당시 중국에서 연수차 방문한 중국 정신과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자폐증(자폐성장애)’란 진단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전까지는 자폐성장애는 쉽게 진단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소아정신과교수로 재직하던 홍강의 교수가 1979년 귀국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처음으로 소아정신과를 개설하고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하면서 말이 늦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전반적으로 발달이 늦은 아이들에게 ‘자폐증’ 진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자폐증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우리아이가 자폐증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부모가 늘어날 정도입니다.

대지’의 작가 펄벅의 딸

펄벅은 대하소설 ‘대지(The Good Earth)’의 작가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여류작가입니다. 펄벅에게는 아주 예쁜 딸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자라면서 사람에 대한 반응이 없고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펄벅의 딸은 6세에 자폐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50년 ‘자라지 않는 아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통해 딸 ‘캐롤’을 세상에 당당히 들어냈고, 세상 사람들은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펄벅은 자서전에서 부모가 겪어야 하는 방황과 아픔을 절절히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 세계의 저명한 의사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결국은 자폐증이 간단한 치료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미국의 한 병원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대지’의 주인공인 왕룽이 ‘첫째 딸이 말도 하지 못하고 제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는 대목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경기도 부천에는 ‘펄벅기념관’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펄벅여사가 직접 운영했던 고아원(소사희망원) 자리였습니다. 소사희망원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아메라시안, Amerasian)을 돌보던 곳이었습니다.

펄벅여사는 자폐증을 앓은 친딸 외에도 입양된 자녀 8명을 두었는데 아동들의 대부분은 한국계 아동들이었습니다. 펄벅은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서 장애아동, 고아, 혼혈아동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레인맨’과 ‘말아톤’의 주인공들

일반인들도 자폐증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영화에서도 자폐증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훌륭한 연기를 펴내 1989년 오스카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인맨’도 그런 영화입니다. 레인맨은 숫자에 예민하고 계산기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을 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들은 피아노곡을 그대로 연주하거나 눈으로 본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모든 자폐아동들이 이런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섬세한 표정과 특이한 말투까지 완벽한 연기를 펼친 조승우의 ‘말아톤’에서는 마라톤을 통해 자폐아동이 사회와 소통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 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폐증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43년 케너(Kanner)에 의해서입니다. 당시의 정신의학은 모든 질병의 원인을 정신분석적인 이론에 근거해 찾았기 때문에 냉정하고 무관심한 ‘냉장고 엄마’ 때문에 아이에게 자폐증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지금은 자폐성장애가 선천적인 뇌장애임이 밝혀져 부모들이 그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신경생리학자, 뇌 발달 전문가들이 모두 이 불가사의한 질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환자보다 이 병을 연구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폐증이 다른 질병과 다른 점은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단하게 치료가 되는 방법은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다각적으로 치료하고 자폐증으로 인한 문제 행동은 가능한 한 줄이고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치료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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