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의 고뇌
[김호중칼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의 고뇌
  • 온라인팀
  • 승인 2016.08.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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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

 

필자는 SNS 중 트위터를 즐겨 사용한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생각과 필요들이 넘쳐흐른다.

누군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증오를 뿜어낸다. 또 누군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지혜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정치적 야심을 가감 없이 뽐내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국경을 초월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세상만사를 체감
하기에 딱 좋은 매체가 트위터 등 SNS이다.

몇 년 전부터 유독 불편한 사진들이 타임라인에 조각배처럼, 때로는 대형선단이 되어 줄지어 업로드 되고 있다. 피 흘리는 사람들, 절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마도 지난 2012년 11월의 악몽이 트위터에서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게 그 시초가 아닌가 싶다. 그달 14일부터 22일까지, 9일 동안 가자 지구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 이스라엘인 5명, 팔레스타인인이 162명 이상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의 발포와 폭격의 현장사진과 동영상이 고스란히 트위터에 올라 충격을 전했다. 일정한 영역을 지키는 동물의 기본적인 속성이 석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를 넘어 더 예리해지더니 화약을 발명하면서 인간의 터전은 전쟁터 자체로 변해버렸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류가 어찌 가장 우등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그 공격성과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심적 상태가 SNS를 통해 동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적이 이민족과 타종교인 인지 아니면 무지와 결핍, 위생과 질병 그리고 환경파괴인지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평화와 풍요 그리고 건강을 추구하면서 상대 인간을 말살하려는 두 얼굴의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더 빠른 비행기와 더 강력한 폭탄으로 상징되는 현대전의 대상이 인간이어야 하는지 세계인의 지성과 양심에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전쟁은 이어졌고, 종전은 다음 전쟁을 위한 쉼표에 불과했다. 쉼표가 찍히면 지도자들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나라는 자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전후 베버리지를 통해 개인의 위험에 대한 사회보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베버리지보고서는 공식적인 보고서로 채택되지 못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의 국민은 궁핍과 폐허 그리고 인간성 상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전쟁참사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고뇌와 새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필요했다. 윈스턴 처칠은 이 비전을 위해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에 관한 부처간 위원회’를 만들고 베버리지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범부처 공무원들이 합동으로 참여해 작성된 보고서는 1942년 12월 1일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 이름으로 보고됐지만, 정부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고 결국 베버리지 개인명으로 발표된 것이다. 그동안 영국을 지배해오던 열등처우의 원칙을 뒤집고 생존권과 최저생활수준 보장을 사회적 권리로 규정했다. 이로써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보편적 복지의 상징 어구까지 영구히 남기게 됐다.

시리아 내전소식도 몇 년째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어지고 있다. 수백만 명이 죽고 그만큼 난민이 발생했다. 그 사회에도 자기 국민을 사랑하고 평화심 가득한 사람들이 전쟁종식과 전후복구를 위한 사회보장의 열망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화와 복지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침묵대신 타임라인을 점령해보자. 리트윗으로 응답받을 것이다.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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