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할 수 있다’⋯‘캔두(Can do)정신’의 부활
[김동철칼럼] ‘할 수 있다’⋯‘캔두(Can do)정신’의 부활
  • 김동철
  • 승인 2016.08.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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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브라질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에 출전한 박상영 선수가 마지막 라운드 직전 혼잣말을 하는 모습이 동영상을 잡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그는 작은 심호흡을 한뒤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복했다. 벼랑 끝에 몰린 10대 14. 박상영 선수는 연속 5점을 따내는 기적 같은 역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 한 번의 승부로 희비가 엇갈리는 올림픽에선 적지 않은 역전 드라마가 연출된다. 박상영 선수의 역전극(逆戰劇)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역전의 감동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비정상적으로 가는 듯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모두가 잊고 있었던 ‘할 수 있다’는 믿음, 꿈과 희망에 대한 자기 확신의 불씨를 지펴주었다. 많은 사람이 15초 혼잣말 동영상을 반복해 보면서 감동하고 뭉클해 하는 것은 그 간단한 한마디가 일으키는 울림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박 선수는 세계 랭킹 21위로 올림픽에 나섰다. 작년엔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도 입었다. 그는 “펜싱을 하기 전엔 칭찬을 거의 듣지 못하는 아이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스마트폰엔 아인슈타인의 말이 입력돼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스무살 청년이 답답한 우리 사회에 ‘긍정(肯定)의 씨앗’을 한껏 뿌려주었다. 장하다! 대한의 청년이여!

중학교 때 펜싱을 하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집안 살림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치’라고 생각한 부모들은 말렸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가출을 결행, 반항했다. 끝내 그는 펜싱의 검을 쥐고 매진하게 된다. 그가 만약 ‘하기 싫은’ 공부에 소처럼 끌려갔다면 지금과 같은 금메달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 ‘하면 된다’는 확신으로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소수의 리더가 밀어붙이던 ‘하면 된다’는 구호는 장기 경기침체와 계층간, 지역간 갈등 속에서 힘을 잃고 있다. “하면 된다”고 하면 “해도 안 된다”는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박 선수는 최악의 벼랑에서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해답을 제시했다. 해설자도, 시청자도 모두 포기했을 때 홀로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주문(呪文)을 자신의 온몸에 투입해 멋있게 성공했다.

박 대통령은 박 선수의 금메달 낭보(朗報)를 받고 우리도 다시 긍정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거 우리는 ‘하면 된다’는 확신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해 부유한 나라를 건설했지만 아직도 이 나라를 ‘헬(hell) 조선!’이라고 비하하고 저주하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사실 이 대목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세계 빈곤 종식의 열쇠로 한국의 ‘캔 두(Can do) 정신’을 꼽았다.

물론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아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으로 아이가 성장, 출세하는 시대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 못한 집안에서 그 많은 과외비를 대고 유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헬(hell) 조선!’을 외치는 것도 너무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늘날 현실이 어떻고, 자신이 놓인 처지가 어떻든 간에 우선 내 앞에 놓인 일을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궁즉통(窮卽通)의 신비! 궁하면 통한다는 궁즉통(窮卽通)은 궁하면 변해야 하고(窮卽變), 변하면 통하게 되고(變卽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卽久)의 정신이다. 공자가 너무나 애독(愛讀)한 나머지 책을 맨 실이 수십 번이나 닳아 없어졌다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어 보이고, 해결난망인 난처함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궁즉통의 주문(呪文)을 외면서 긍정심을 함양해 보자. 긍정심에 따른 열정이 같이 할 때 어느 순간 막혔던 문제의 해법이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칠지 모를 일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도 ‘하면 된다’ 정신이었다. 정유재란 때인 1597년 7월 17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수군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야간 기습을 받아 이순신 장군이 어렵사리 장만했던 전선 256척과 1만여명의 수군을 바닷속에 수장시켰다. 이 해전에서 원균은 물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유명 장군들이 목숨을 잃었다.

선조는 부랴부랴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불러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교지를 내렸다. 그러나 병선도, 군사도, 병기도, 군량도 없는 조선수군은 허울뿐인 허깨비 신세였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난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 팔을 걷어붙여 수군재건의 길에 나섰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그런데 선조는 조선수군이 힘이 보잘 것 없으니 수군을 폐지하고 도원수 권율의 육진에 합류할 것을 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아니되옵니다. 제발 수군을 폐하지 말아주십시오. 수군이 없으면 왜군은 서해를 지난 한강, 임진강, 예성강, 대동강으로 수륙양동작전을 펼칠 것입니다”라는 장계를 올렸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신에는 십이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전선수과(戰船雖寡) 비록 전선의 수가 적지만은
미신불사즉(微臣不死則) 미약한 신이 죽지 않고
출사력거전(出死力拒戰) 죽을 힘을 다해 전투를 한다면
불감모아의(不敢侮我矣) 감히 적이 우리를 얕보지 못할 것입니다.

칠천량 패전 두달 후인 9월 16일 왜수군은 조선수군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300여척의 군선을 총출동시켰다. 이 정보를 들은 이순신 장군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가지고 도망간 12척의 판옥선 외에 1척 등 모두 13척으로 중과부적의 상황을 맞이했다. 장군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물목이 좁은 울돌목을 이용하기로 했다. 조류의 흐름과 시간 차이는 물론, 울돌목을 등지고 싸우는 것은 불리하다는 계산 아래 전투 하루 전날 전라 우수영으로 진을 옮겼다.

조선수군과 왜수군의 전선 수는 13대 133이었다. 왜수군의 거대 선단은 뒤에 배치되었다. 좁은 물목을 이용한 이순신 장군은 왜수군 선발대 31척을 맞아 13척의 전선으로 수장 또는 분멸(焚滅)시켰다. 판옥선에 탑재된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 등 아무리 조선 수군이 전력상 우세하다고 해도 10대 1의 중과부적(衆寡不敵) 상황을 극복한 해전으로 하늘이 준 은혜, 즉 ‘천행(天幸)’으로 꼽힌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긴 이순신 장군은 지략가로 그 이름이 명나라까지 알려졌다. 그 정신의 바탕은 필사즉생(必死卽生)! ‘필히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또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 즉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천명의 사람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불굴의 정신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必死卽生)을 바탕으로 한 ‘할 수 있다’는 리더십은 필자가 저술한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에 세세하게 기술돼 있다.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파이데이아 칼리지 겸임교수
- 문화체육관광부 인생멘토 1기 (부모교육, 청소년상담)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이순신이 다시 쓰는 징비록’ ‘무너진 학교’ ‘밥상머리 부모교육’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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