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아버지와 딸
[김영화칼럼] 아버지와 딸
  • 온라인팀
  • 승인 2016.04.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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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2009년 발행된 5만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의 얼굴이 들어갔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그동안 남성위주 기념화폐만 있어 양성평등기준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폐에 여성의 얼굴이 우리나라보다 늦은 2020년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여성 참정권 보장 100주년을 맞아 20달러 지폐앞면에 노예해방운동가였던 흑인여성의 얼굴을 넣기로 했습니다. 

화폐에 여성들의 얼굴이 들어가는 것은 ‘21세기는 여성의 세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아이가 잘 때 부모와 함께 자야 하나요?”, “아이가 저의 퇴근을 기다리다가 밤늦게까지 자지 않으려 하는데 아이를 강제로 재워야 하나요?” 이런 질문은 젊은 검사 아빠, 엄마들에게 받은 질문입니다. 

저는 작년 11월 전국에서 모인 검사들을 대상으로 법무부에서 실시한 다양성 관리교육에서 ‘조직 내 성별차이로 인해 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받는 질문 시간에는 강의 주제보다 소아정신과의사인 저에게 자녀양육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저에게는 젊은 검사 중 40%가 여성이란 점, 그리고 젊은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알파 걸’은 아버지가 만든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고 전 세계적으로 엘리트집단에 속한 여성의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알파 걸’이라고 부릅니다.

알파 걸(으뜸 딸)은 미국 하버드대학 아동심리학 교수인 댄 킨들러가 자신의 저서 ‘새로운 여자의 탄생-알파 걸’에서 처음 그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자는 미국과 캐나다의 15개 학교를 방문해서 900여 명의 중·고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재능 있고 성적이 우수하며 리더이거나 앞으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소녀 113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20% 여학생들이 공부나 운동뿐 아니라 친구관계, 리더십 면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엘리트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이 아이들에 대해 이전세대의 여성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자신이 여성인 점에 심리적으로 전혀 열등감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알파 걸의 탄생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습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아버지와의 관계는 자녀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조사에서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경우 아이들은 탈선하지 않고 더 순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 자신감도 높았습니다. 

특히 딸의 경우 아버지와 대범하고 장난스럽게 놀아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긴장을 덜 하고 겁 없이 모험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가진 딸들은 직장생활에서 남자들과 경쟁할 때 겁을 덜 내고, 상사나 동료 남자들을 더 편안하게 상대할 줄 알기 때문에 직장생활도 더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인간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버지에게 배웠다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전 영국수상 마가렛 대처는 “인간으로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버지에게 배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대처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함께 읽고, 정치인의 연설을 듣게 하고, 정치문제에 대해 딸과 토론하기를 즐겨했습니다. 

대처수상이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태도로 남성들만이 있는 정치판에서 살아남아 여성총리가 되기까지는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부모 아래서 자란다면 딸들은 자신이 여성임을 열등하게 받아들입니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지배적이고 독재적인 아버지 슬하에 자란 딸들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남성인 아버지를 닮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설사 사회적 성공을 이룬다 해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기비하 때문에 진정한 만족감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자녀를 기르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은 어떤 아버지일까요? 좋은 아버지, 나쁜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 다정한 아버지, 무관심한 아버지 등 아버지는 가지각색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녀의 인생 전반에, 특히 딸의 성공적인 사회생활과 행복에는 아버지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저녁 밥상 앞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스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아버지, 아이들과 재미있는 놀이를 함께 하는 아버지,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하우스 허즈번드’가 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아버지가 ‘알파 걸’ ‘알파 보이’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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