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엄마의 우울증
[김영화칼럼] 엄마의 우울증
  • 온라인팀
  • 승인 2016.04.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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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치마를 뒤집어쓰고 우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20년 전에는 이런 호소를 하시는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으로서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참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한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엄마들 때문일까요?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울화를 제대로 삭이지 못해 화가 가슴을 치고 올라와 가슴이 답답해지는 화병이 있었습니다.

이 화병(Hwa-byung)은 1995년 세계정신의학계에서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독특한 정신질환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화병은 한국의 가정주부들에게 나타나는 ‘이유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는’ 병이었습니다.

예전의 엄마들은 결혼생활 도중에 남편과 시집식구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눈 막고 삼년, 귀 닫고 삼년, 입 다물고 삼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때 생긴 억울함을 들어내지 못하고 꾹 누르기만 해서 우리나라 엄마들의 독특한 문화적 정신질병인 화병이 생긴 것입니다.

육아 우울증

1970~80년대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여성들의 사회진출로 여성들의 생활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화병 대신에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 주부들이 우울한 가장 큰 원인은 ‘아이 양육의 어려움’(42.0%)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전엔 대가족 하에서 육아를 여러 사람이 분담했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오롯이 엄마의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경쟁사회에서 아이를 남에게 뒤지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하고 있나?” “나는 좋은 엄마일까?” 자녀를 기르는 엄마라면 때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엄마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워킹맘들은 아침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두고 직장에 갈 때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30~40대 엄마들의 경우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육아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육아 우울증은 정확한 의학용어는 아닙니다. 아이 키우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엄마의 우울증 왜 위험할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사이가 나빴거나, 다른 형제에 비해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꼈거나, 부모에게 적대감이 있는 경우에는 막상 자신이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양가감정(좋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를 소원하게 대하다가 지나친 관심을 보이다가 하는 등 변덕을 부리게 됩니다. 그리고 곧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해집니다. 이런 경우엔 아이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아이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엄마들은 아이를 거칠게 다루거나 때릴 수도 있고, 아이에게 욕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동 1만7백 명을 대상으로 신체발달 상태를 조사했다. 출산 후 심한 우울증을 겪은 엄마의 아이들은 우울증이 약하거나 없었던 엄마의 아이들에 비해 4세 때 키가 하위 10% 미만일 확률이 40% 더 높고, 5세 때는 48%로 더 높았다.’ ‘우울증을 겪는 엄마와 자녀 115명을 대상으로 엄마의 우울증치료를 실시하자 자녀들의 불안장애, 우울증, 파괴적인 행동이 개선됐다.’

이런 조사결과는 엄마의 우울증이 아이의 건강한 발달과 정신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 엄마들은 직장과 육아 모두를 잘 해내야 한다는 주위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완벽하고 헌신적인 ‘최고의 모범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육아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완벽한 엄마 콤플렉스에 가두지 말고 설사 엄마로서 부족한 자신이라 느끼더라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위에 도움을 구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슈퍼맘’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엄마가 아니라 편안하고 따뜻한 엄마, 행복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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