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칼럼] 아동학대 왜 생기는 것일까?
[김영화칼럼] 아동학대 왜 생기는 것일까?
  • 온라인팀
  • 승인 2016.02.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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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화 강동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저는 1999년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네바 대학 내의 루소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의 서명이 담긴 방문록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글 서명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물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히 여겨지는 이 말은 지금부터 300년 전 프랑스 계몽 사상가였던 장 자크 루소가 처음으로 주창한 것입니다.

루소는 ‘에밀’ 서문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린이 속에서 어른들을 찾고 아이들을 어른의 축소물, 또는 미성숙한 어른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익지 않은 과일을 미리 따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에밀’을 저술하는 이유는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며,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들과 다르고,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물이나 복사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이 말에 진정으로 공감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아이들을 작은 어른 취급하여 생기는 문제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말하기가 늦고 불러도 반응이 없으며, 엄마에게 유달리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혹시 자폐는 아닌가 걱정하는 부모와 함께 진료실을 많이 찾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가 미숙하거나 정서적으로 우울해서, 아이와 애착 형성이 되지 않아 발생한 유사자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이들은 내버려둬도 저절로 잘 자란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부모가 지극 정성으로 잘 키우고 아이가 공부도 잘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와 대화가 잘 된다며 어린 자식을 친구 대하듯 합니다. 이런 경우는 아이를 어른의 축소판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어른 취급하면 아이에게는 불안증상이 생깁니다. 부모의 하소연이나 불평을 듣고 오히려 부모를 위로해주는 아이들은 그만큼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하는 행동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2008년 설 연휴기간에 일어난 울산 아동학대사건의 피해자인 5세 남자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2015년 10월 22일에 방영된 MBC ‘경찰청사람들 2015’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저는 계모에게 살해 당하기 전 학대 받던 아이가 그린 그림을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항상 화가 나있고 힘이 센 아빠와, 화난 눈과 웃는 얼굴의 이중성을 보이는 엄마, 그리고 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웃고 있는 나… 아이는 항상 부모의 표정 변화를 살피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설사 학대를 당한다 해도 학대사실을 주변에 알릴 수 없습니다. 이 아이의 세상에서는 학대당하는 것이 당연하고 살아남기 위해 어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올 들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유기하는 아동학대 범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의아해합니다. 저는 루소의 말처럼 ‘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무지’가 아동학대의 배경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성장의 발달단계를 정하고 그 발달단계에 맞는 양육과 교육을 주장한 루소는 분명 오늘날 아동심리학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루소의 ‘에밀’을 떠올린 것은 지금도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밀’이 출간된 지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더 잘 알고 있고, 또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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