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육아휴직 체험수기(2) -공모 최우수상 이재완
2015년도 육아휴직 체험수기(2) -공모 최우수상 이재완
  • 장은재
  • 승인 2016.01.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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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타임즈=장은재 기자]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지금 시작하세요’에 게재된  ‘아빠 육아휴직’ 체험 수기를 전제한다. 체험수기에는 '아빠 육아휴직' 17편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체험 수기 6편 등 총 23편이 게재됐다. 다음은 최우수상을 수상한 수기이다. 

[최우수상] 보통 남자의 육아휴직 이야기  

이재완 34세 ◯◯자동차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그 ‘누군가’가 부모일 때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나는 한 번쯤은 아이의 진정한 아빠이고 싶었다. 주중에 사라졌다가 주말에 나타나는 아저씨가 아닌 ‘진짜 아빠’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평범한 사람임을 밝히고 싶다. ‘사회적으로 대단히 평범’하다는 건, 내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어디서든  튀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조화롭게, 혹은 무던하게 흘러가기를 희망하며 살아온 보통 남자라는 뜻이다. 이 글은 그런 평범한 남자의 육아휴직 수기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 직장인 부부다. 동갑내기 친구이니만큼 가정안에서의 역할을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같은 직장인으로서 사회생활의 무게 역시 동등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노력’이란 건, 가사 분담과 육아 문제,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에 따른 의견 조율(부부싸움)의 좋은 말이다. 결론적으로 난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왠지 등 떠밀려 휴직을 하게 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게 있어 육아휴직은 실(失)보다 득(得)이 많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신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서 말이다.  

내 아내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진급 누락의 아픔을 겪었다. 무려 3번이나.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정당한 처사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내버려 두더라도 남편으로서, 같은 직장인으로서, 아이를 잉태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남의 일처럼 그저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그 책임은 온전히 아내 혼자 지는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낯설고 어색했던 이름 ‘아빠’  

아이가 태어나자 처가에서 돌봐주셨다. 아내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일부를 이용해 몇 개월간 처가에서 아이를 돌봤다. 그러다 진급 문제로 회사에 복직했다. 그 해는 아내의 두 번째 진급 평가 기간이었다. 1년 정도 주중에는 장모님께서, 주말에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돌봤다.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장모님께 데려다주고 나면, 주중엔 아이 걱정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이를 자주 만나지 않아서인지 크게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내가 한 아이의 아빠라는 실감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똑같은 일요일 저녁, 아이에게 “안녕, 주말에 또 올게.”하고 인사를 하고 처가를 나서는데,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갓난쟁이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그 알 수 없는 표정이 그날 내내 가슴에 박혔다.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분명 내 아이인데, 내가 키워야 하는 아이인데 그 책무를 나 몰라라 하는 내가 과연 부모의 자격이 있나 싶었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아이와 떨어져 지낸 1년 사이, 힘든 육아로 인해 많이 야윈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아내와 얘기를 하고 우리 부모님께 휴직에 대해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다. 그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부모님은 꽤 개방적인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소한 남성 육아휴직으로 인해 아들의 앞날이 불투명해질까 봐 걱정하셨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 화살은 아내에게 돌아갔다. 아내는 남아있던 육아휴직 6개월을 다시 사용했고 그로 인해 진급은 또다시 불확실해졌다.  

한 번쯤은 진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내의 휴직이 끝나갈 때 즈음 나는 다시 휴직을 고민했다.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했고, 그 ‘누군가’가 부모일 때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다.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있는데 차선을 고민한다는 게 아이에게 미안했다. 부모의 손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한 번쯤은 아이의 진정한 아빠이고 싶었다. 주중에 사라졌다가 주말에 나타나는 아저씨가 아닌 ‘진짜 아빠’ 말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부모님 설득이 가장 어려웠다. 서른 살을 넘게 먹고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기가 어려웠고, 굳이 허락을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어린아이 같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내 스스로가 얼마나 독립적이지 못 하고 의존적으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에 많이 달랐고 서로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내가 이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조금은 더 부드럽게, 서로 생채기 없이 의견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부모님의 동의를 포기했고, 부모님도 더 이상 내 의지를 말리지 않으셨다.  

내 스스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휴직을 결심했지만, 그다음은 회사에 통보를 해야 하는 고비가 남아있었다. 나는 육아휴직으로 인해 회사에서 겪게 될 많은 변화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회사에서 쌓아온 나의 경력과 이미지가 달라지는 건 아닌지, 그런 결과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결정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등등…….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때 어떤 문제가 뒤따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예감은 들었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치러지는 경주를 스스로 포기하는 낙인과도 같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회사에 휴직 얘기를 꺼낼 땐 이미 모든 고민을 끝내고, 무조건 휴직 허가를 받아내겠다는 굳은 각오를 한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육아휴직에 있어서 ‘허가’라는 것은 없다. 다만 회사에 도의적인 양해를 구하는 것뿐이다.  

제일 처음 가장 가까운 상급자에게 말씀을 드렸다. 누군가 휴직을 하게 되면 다른 팀원들이 그 사람의 업무를 골고루 나눠 받거나, 혹은 임시직 직원이 대신해 주는데, 내 경우는 전자의 상황이었다. 나는 내 업무를 대신할 직원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상황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예상외로 같은 팀원 분들께서 휴직 사유에 대해 공감해 주셨고 같은 가장이자 직장 동료로서 격려와 응원도 해주셨다. 휴직을 하기 몇 개월 전 나는 새로운 팀으로 발령이 났다. 다행이었다. 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업무량이 오랜 기간 일 해온 선배들보다 적었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이 불편을 좀 겪게 되더라도 감수해주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팀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걱정과는 달리 면담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었다. 팀장님은 내 처지를 깊이 공감해주셨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분들도 회사와 국가의 발전에 헌신하느라 아빠 역할에 소홀했던 아픔들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팀장님은 내 상황을 이해해주셨고, 나는 팀장님이 ‘육아휴직’이라는 불편한 보고를 조금이라도 더 쉽게 하실 수 있도록 자필과 워드로 작성한 편지를 드렸다. 아직은, 아니 아마 한참 뒤에도 팀 안에서 육아휴직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유쾌한 보고 내용은 아닐 것이다.   

시일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난 무리 없이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다.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은 딱 한 번만 나눠 쓸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6개월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성 육아휴직이 드문 경우이니만큼 처음부터 1년을 신청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연장이 필요할 경우 6개월에서 다시 6개월 연장은 가능해도, 3개월 휴직 후 9개월을 연장한다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팀장님과 실장님께서는 예상외로 흔쾌히 양해해 주셨다. 다만 직장 선배로서 후배 사원의 앞날을 진지하게 걱정하셨다. 사실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호되는 직장인 부모의 권리다. 허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내가 이 부분을 되도록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잡음 없이, 좋은 이미지를 유지한 상태로 휴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고 있지만, 개인의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보장해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 일기  

내 휴직원이 회사의 보고체계를 거치는 동안 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육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에게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서 어린이집도 그만두게 했다. 이제 막 매질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에 물을 묻히는 셈이었다. 좀 더 강한 고통을 위해서 말이다. (물론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되어 남은 6개월을 휴직할 수 있다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일 처음 한 일은 매주 하나씩 어린이 뮤지컬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좋은 선택이자 나쁜 선택이기도 했는데, 전자는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끝나고 밥을 먹거나 다른 놀이들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나쁜 선택이 되는 이유는 네 살배기 아이는 절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바지를 입히면 한쪽 바지 통으로 양 발을 뺀다거나 윗옷을 입히려 하면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던지고 나체로 집안을 활보한다.  생각한 즉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행일치(思行一致)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실랑이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전에 서로가 지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정해져 있는 체험활동이나 관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이런 일정 하나하나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던 내게는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행사이자 동력이 되었다.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하나씩 배워가기 

6개월간의 육아휴직은 크게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를 내가 직접 키운다는 열의,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는 행복감, 5년간 매일같이 출근했던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으로 지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손을 잡고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머리를 맞대고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한참 동안 쳐다보기도 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상상조차하기 힘들었던 사소한 여유로움이었다. 이런 일상이 지겨워질 때면 앞서 말했던 어린이 뮤지컬을 가거나 체험활동을 다녔다. 

물론 육아휴직이 행복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휴직 전,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거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아휴직은 그런 게 아니었다. 육아란, 쉴 틈이 없는 강도 높은 노동이다. 그래서 출산 전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며 아무리 힘들게 직장을 다녔던 산모라도 몇 개월만 지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육아다. 본인의 숨겨진 애사심을 발견하게 만드는 게 바로 육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기대와 열정들이 고된 현실과 부딪히면서, 사무실에만 앉아있던 내 저질 체력은 휴직을 한 지 한두 달 만에 다 고갈돼버렸다.   

되돌아보면, 나는 ‘어떻게 하면 육아휴직을 가족과 회사에 어려움 없이 이해시키고 허락받을 수 있을까’란 과제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 같다. 정작 가장 육아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육아라는 본 게임에 들어가면 뭔가 새롭게 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고 나면 아이를 재우다 지쳐 같이 잠들기 일쑤고, 잠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늦은 밤에 취미활동을 하면 그 다음날에는 피곤에 지쳐 예민해진다.

고된 주부의 일상이 하루하루 반복돼 어느새 호탕하고 착한 역할이었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낮에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밤에는 후회하는 우울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휴직 중반기에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육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집안일은 최소화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놀이’에 초점을 맞췄다. 아침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구성하고, 점심에는 아이와 함께 어디든 나가서 놀았다. 일주일 동안 매번 다른 동물원과 수족관을 서너 군데씩 다니고, 아이가 좋아하는 문화 공간이나 놀이터, 공원,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아이와 몸을 움직이며 함께 관찰하고, 놀고,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아이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게 되었다. 예전보다 밥도 잘 먹고, 잠투정도 줄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추억꺼리가 생겨 즐거웠다.  

아내는 내가 육아에 집중하느라 미뤄둔 집안일을 열심히 도왔다. 직장이 비교적 가까웠던 아내는 점심을 같이 먹거나, 일찍 퇴근해 저녁을 만들어주었고 밀린 빨래나 청소를 해결했다. 주말에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휴식시간을 줬다. 나는 친구를 만나거나 늘어지게 늦잠을 자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었다. 마지막 두 달간 나는 이렇게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쉬지 않고 아이와 놀았다. 

그렇게 6개월간의 육아휴직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에 복직해 예전과 같은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6개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팀원 분들도 “벌써 복직할 때가 됐냐?”며 놀라셨다. ‘이런 반응일줄 알았다면 6개월 더 연장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던 소중한 시간  

휴직 기간 동안 어려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성 육아휴직의 가장 어려운 점은 함께 어울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육아가 대부분 엄마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함께 육아의 고통을 나누거나, 낮에 같이 놀러 나갈 친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아이와 단둘이 지내다 보면 어른끼리의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휴직을 하기 전에 남성 육아휴직 모임이나 카페에 가입해서 필요한 정보도 얻고 같이 시간을 보낼만한 오프라인 친구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가까운 지인 중에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좋기는 하다. 아이들도 또래와 함께 어울리면 돌보기가 한결 수월해지기 마련이니까.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휴직에 대한 후회는 없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인생의 주체가 된 것, 그래서 앞으로의 선택이 한결 자유로워질 것이란 점이 내게는 큰 소득이다. 아이의 성장을 함께했다는 즐거움과, 추억을 바탕으로 한 아이와의 끈끈한 친밀감도 더 할 나위 없는 보상이다. ‘육아휴직자’라는 타이틀이 주위 여성들에게 큰 호응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엄마들이 겪고 있는 육아와 가사 노동의 피로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남성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아내에게 평생 생색을 낼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다. 물론 아내가 나보다 더 힘들게 육아휴직 기간을 보낸 게 사실이지만, 남성 육아휴직은 그 희소성만으로도 충분히 생색의 기쁨을 누릴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이런 수기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현재 아이는 휴직을 반대하시던 부모님께서 잠시 돌봐주시고 있다. 우리 부부는 주중에는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지내는 또 다른 형태의 삶에 도전하고 있다. 가능한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려고 하지만, 가끔은 어떤 삶의 형태가 옳은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쩌면 세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아직은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육아휴직’을 선택한 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도 우리 아이 세대나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제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 부부들에게 조금은 더 수월하게 활용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많은 아빠들이 용감하고 솔직하게 가족을 위한 자신의 선택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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