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육아휴직 체험수기(1) -공모 대상작 고현철
2015년도 육아휴직 체험수기(1) -공모 대상작 고현철
  • 장은재
  • 승인 2016.01.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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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타임즈=장은재 기자]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당당한 선택 행복한 육아, 지금 시작하세요’에 게재된  ‘아빠 육아휴직’ 체험 수기를 전제한다. 체험수기에는 '아빠 육아휴직' 17편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체험 수기 6편 등 총 23편이 게재됐다. 다음은 대상을 수상한 수기이다.  

[대상]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고현철 35세 ◯◯코리아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을 때 함께 있어주고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추억을 만드는 게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빠가 좋아?” “뽀로로가 좋아?”   

첫 째 딸 은율이가 세 살이 될 무렵 한창 뽀로로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아무리 뽀로로지만 나는 아빠고 너를 낳아 준 사람인데, 설마 가상의 캐릭터보다는 나를 더 좋아하겠지.’하며 자신감 있게 던진 질문이었다. 뽀로로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아빠가 더 좋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이가 대답을 하면 “아빠도 은율이를 많이 좋아해”하면서 안아줘야겠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뽀로로를 선택한 것이다. 안경 쓴 펭귄에게 인기투표에서 지자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나는 인자하니까, 게다가 ‘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인기 캐릭터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걸 나는 다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가 좋아?” “재범이 오빠가 좋아?”  

재범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은율이와 함께 노는 이웃집 아이다. 우리 딸의 답변은 아빠 대신 재범이 오빠였다. 나의 실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마치 벌써 다른 남자에게 우리 딸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질문은 급기야 ”아빠가 좋아?” “똥이 좋아?”까지 이어졌다. ‘에이, 설마 똥이 좋을까?’ 그러나 이번에도 우리 딸은 똥이 더 좋다며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안고 있던 뽀로로 인형을 더 세게 안는다.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빠일까?  

가볍게 했던 질문이 가족 안에서의 내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 쓴 펭귄보다도 못하고, 이웃집 재범 오빠보다도 못하고, 게다가 모두가 꺼리는 배설물보다도 내가 못하다는 건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은율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을 때 함께 있어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함께 있는 것, 함께 노는 것,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게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없었다. 때때로 재미있게 놀아주기는 했지만, 그럴 때도 내가 먼저 지치고 또 지루해져서 어떻게 하면 이 놀이를 빨리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당시에 회사의 업무와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아까지 함께 하는 건 너무 벅찼다. 게다가 그 시기에 둘째를 출산한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어서 육아와 가사를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회사 일과 대학원 수업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지,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야지.’ 하면서도 실제로는 업무와 학업에 치여 집에 오면 밥 먹고 쓰러져 자는 게 일상이었다.          

조금씩 지쳐갔던 우리 가족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어느덧 아내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아내는 일 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지 적응하는 시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나 역시 아직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 어떤 것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묵묵히 가사와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끔씩 자기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만이라도 내가 가사와 육아를 함께 했다면 아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정 싸움에 불을 지피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쌍한 건 두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침대에 누웠지만 아내는 끝까지 아이들을 목욕을 시키고 양치질을 하게 했다. 어린애들이라 엄마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고 끝내는 꼭 혼이 나곤 했다. 그때 아내는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지만, 말투와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마치 나를 혼내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엄마에게 영문도 모른 채 혼이 나니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그러다 집이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들이 불쌍했고, 아내에게는 미안했으며, 나에게는 실망했다. ‘내가 바라던 건 이게 아닌데….’ 하지만 당시 아내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가사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식기세척기를 사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집안일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봄바람처럼 따스했던 아이들의 노랫소리

그러던 어느날, 몸이 좋지 않아 하루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그때 한 손으로는 첫째 딸 은율이의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둘째 아들 성진이를 안고 갔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은율이의 손과 성진이의 가슴이 봄기운처럼 따뜻했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은율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다. 성진이는 옹알이를 하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가슴속에서 행복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 순간 육아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행복을 오래도록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약 15분에서 20분 정도의 거리.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그날 저녁,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육아휴직이 최선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결혼을 해 출가를 했지만, 부모님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도 존중하고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남성 육아휴직 기사와 자료를 검색했다. 그리고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현재 남성 육아휴직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조사했다.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남자들 중에 육아휴직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육아휴직에 대해 말을 꺼냈다. 대답은 하지 않으셨지만 걱정이 많으신 눈치였다. 부모님께는 일단 시간을 두고 이해를 구하기로 했다. 아내에게는 육아휴직에 대한 생각을 이미 전달했지만 그보다도 뭔가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가사와 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부대찌개, 궁중 떡볶이 등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고, 아이들과 몸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들을 했다. 달라진 내 모습에 아내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고, 조심스레 나의 육아휴직을 허락해 주었다. 부모님께서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이제 남은 것은 회사였다. 아직 회사에서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회사에 대한 한 가지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 회사는 법과 규정을 매우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법규와 상관없이 성과만을 중시하는 회사에 대한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가 경험한 우리 회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법과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회사 규정을 찾아보았다. 역시 육아휴직 규정이 있었고 성별에 무관하게 신청할 수 있었다. 

쉽지 않았던 육아휴직 신청 과정  

나는 용기를 내 인사부와 우리 부서 팀장님께 차례대로 면담 신청을 했다. 인사부에서는 규정상 육아휴직이 가능하다고 했다. 쉽게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팀장님과의 면담은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계속 듣고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육아휴직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들었다. 그렇게, 인사부 및 상급자들과 논의해보겠다는 내용으로 1차 면담을 마쳤다. 관련 내용을 알아본 결과, 회사 업무가 없는 주말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 불가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이 부분이 해결되었지만 2차 면담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채용하는 문제가 쟁점이 됐다. 팀장님께서는 우리 집에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닌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데 대해 거부감이 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이해는 되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와 집안에 큰 문제가 있어야만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육아휴직을 하는 게 아닐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육아휴직 관련법과 회사 규정을 들며 내 의지를 전했다. 결국 휴직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서야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우선 아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 가방 안에 많은 것들을 챙겨 담는다. 나는 가방에 너무 많은 것을 넣으면 찾기가 힘드니까 정리를 하라며 자주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혼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해 보니, 나 역시 아이들의 물건을 가방 안에 한가득 챙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목마를 것에 대비해 물통을 넣고,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물티슈와 기저귀도 여러 개 넣어야 했다. 음식을 먹다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수도 있으니 여벌옷도 챙겨야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가방이 한보따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빨래를 개어 옷장에 정리할 때면, 뒤집어진 내 양말과 옷들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아이들이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어질러지는 집을 보면서 ‘그동안 아내가 정말 많이 참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끼니를 챙기느라 밥을 물에 말아 대충 먹기도 했고 설거지를 하려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선 채로 긁어먹기도 했다. 회사에 다닐 때 ‘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건데 좋은 거 먹어야지.’ 하며 음식을 가려서 먹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줌마가 다 된 내 모습을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동안 묵묵히 집안일을 해온 아내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집안일도 하지 않으면서 핀잔만 늘어놨던 나의 언행을 참아가며 지금까지 아이들을 잘 키워온 아내에게 존경심마저 생긴다.  

아내와의 관계 회복 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감은 육아휴직의 가장 큰 선물이다. 어린이집에 손잡고 갈 때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소리,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때 들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만큼 우리 가족 에게 힐링이 되는 것은 없다. 가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할 때는  근처 공원에 가서 뛰어놀거나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 주는데, 그 럴 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감에 젖곤 한다.  

육아휴직으로 달라진 나, 그리고 우리 가족 

유치하지만 최근에 우리 딸에게 다시 인기 조사를 했다. 두려운 마음에 ‘똥’부터 시작해서, ‘재범 오빠’와 ‘뽀로로’까지 하나씩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조금도 망설임도 없이 ‘아빠가 제일 좋아’라고 대답했다. 육아휴직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둘째 아들 성진이의 변화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자주 짜증을 내고 우울해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항상 밝게 웃어서 보람이 크다. 같이 노는 시간을 늘린 것만으로 아이의 행동과 성격이 놀랍도록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아이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은 그저 같이 있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덕분에 아이들에게 나의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앞으로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이 기대된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 외에 나 자신의 삶에도 몇 가지 좋은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전에는 바쁘게 생활하느라 주위 사람들을 챙기지 못 했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 했는데, 지금은 가끔씩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부모님과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못지않게 참 소중한 시간들이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면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쓴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거실에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의자에 기대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 좋은 구절이 있으면 일기장에 옮겨 적기도 한다. 그러다 책을 덮고 생각들을 하나씩 일기장에 적어 내려갈 때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토록 원했던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좋은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으니 몸도 건강해진 것 같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매년 남성 육아휴직자들이 급증하고 있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점차 안정되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 주위 친구들과, 대학원 동기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면 처음부터 우리 회사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먼 나라 얘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회사만 해도 나의 육아휴직을 계기로 남자 직원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런 제도가 있느냐’부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승인을 받았는지 묻기도 한다. 나는 이런 변화가 조금씩 더 많이 확대되었으면 한다. 아직 육아휴직 초기이지만, 내게는 벌써 이렇게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찾아왔다.  

주위에도 육아와 가사로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많다. 하지만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선택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좁게는 가정의 행복에서부터 넓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의 육아휴직 제도가 확실하게 정착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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