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이 채 안든 청와대 사랑채 '작은결혼식'
1000만원이 채 안든 청와대 사랑채 '작은결혼식'
  • 최윤희
  • 승인 2013.03.03 05: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화 결혼식으로 허리가 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축복받아야 할 자식들의 마음도 편치 않는 경우가 꽤 많다. 민영 통신사인 뉴시스의 류난영 기자가 직접 체험한 '작은 결혼식' 체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류난영 기자 = "청와대 사랑채에서도 결혼식이 진행되나요?"

기자는 지난달 1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여성가족부와 조선일보,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고비용 결혼문화를 바꾸고 검소한 혼례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기 위한 '작은 결혼식'은 피로연을 포함한 전체 결혼 비용이 1000만원이 넘지 않는 간소한 결혼식이다. 하객도 양가 합해 200여명 정도로 보통 결혼식의 절반도 안된다.

양가는 예물도, 예단도 주고받지 않았다. 폐백과 이바지도 생략했다.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촬영 비용과 피로연 비용 등 결혼식을 올릴때 꼭 필요한 것만 했지만 유명한 음악가들의 재능기부와 현직 장관의 주례로 평생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비용도 신혼여행, 피로연, 웨딩촬영까지 모두 합해 100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작은 결혼식에 언론인이 참여 한 것은 드문 일이다. 다른 언론사가 참여하고 있는 대대적인 캠페인에 동종 업계 기자로서 참여한다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기자가 처음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평생 한번 뿐인 결혼인데 무엇하러 그렇게 하느냐"며 "눈치 안보고 대폭적인 부모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때 뿐이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며 말리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용기를 얻어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나 하는 예물 반지를 받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억원이 든다는 호텔 결혼식은 더더욱 싫었다. 예식이 끝나면 사라져 버리는 소모성 경비에 돈을 쓰기보다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대신 평생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결혼 비용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해결했다. 비용이 많이들지 않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충분했다.

작은 결혼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애로점도 많았다. 보통 결혼식에서는 웨딩플래너만 정하면 예식장과 피로연, 촬영 등 모든 과정을 다 알아서 '척척'해 주지만 작은 결혼식은 모든 것을 신랑 신부가 직접 계획을 짜고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겪었다. 기쁜날을 이용해 상술을 부리는 악덕한 업체들 때문이다. 한 웨딩업체는 기자에게 "원한다면 저가로 진행할 수는 있지만 권해드리지 않는다. 하나 당 몇 십만원만 더 추가하면 되는데 평생에 한번 뿐인 결혼인데 망치실 거냐"며 엄포까지 놨다.

기자는 작은 결혼식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결혼식 취지에 공감하는 다른 업체가 보다 저렴하면서도 의미 있는 한복웨딩드레스를 준비해 줬다. 피로연은 출장부페를 이용했다. 청와대 사랑채가 예식장이 아니다 보니 결혼식 진행에 필요한 신부대기실과 식장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출장부페를 통해 진행해야했다. 하객 의자와 꽃길, 신부대기실 등을 임시로 만들었지만 억소리 나는 고급 호텔 결혼식이 부럽지 않았다.

기자가 작은 결혼식을 잘 치를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각계 각층의 도움과 지지가 컸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기획사 나눔커뮤니케이션즈에 소속된 음악인들도 작은 결혼식에 공감해 재능기부로 작지만 '감동있는 콘서트'를 마련해줬다.

주례는 기자가 출입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장인 이주호 장관이 맡았다. 평생 한 번도 주례를 서 본 일이 없다는 이 장관은 "작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는 취지가 너무 좋아서 승락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촐하지만 이색적이고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감동적인 결혼은 처음봤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작은 결혼식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본인 스스로 결혼 비용을 마련하고 허례하허식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you@newsi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