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오지 트레킹의 즐거움
[정경석의 길] 오지 트레킹의 즐거움
  • 송지숙
  • 승인 2017.07.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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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오지(奧地)라는 단어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오지는 전문가들이 가는 위험하고 험난한 곳이라는 의미보다,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깊은 산속을 뜻한다.

트레킹 문화가 발달하면서 애호가들은 조금 더 자극적인 코스를 원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스포츠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오지 코스는 하루 종일 걸어도 편의시설이나 민가 등을 찾을 수 없으며, 때론 마실 물도 찾기 어려워 미리 찾아가는 곳의 기본적인 환경을 알고 준비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

현재 국내의 거의 모든 트레킹 코스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준비해 놓은 것이 많아 제대로 된 이정표와 화장실, 그리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택해 일반인에게 홍보하고 있지만 오지 트레킹은 대개 이미 다녀왔던 사람들의 기록만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 곳은 대개 다녀온 경험이 있는 리더의 동행이 없이는 찾아가기 힘들다.

자연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오지에서는 식물도감을 찾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제대로 조림하지 않은 나무들이 얼크러져 있는 모습들, 그리고 자연의 힘으로 이리 저리 엎어져 가며 다져진 무질서한 바위들과 오랜 세월 폭우로 인해 저절로 패이고 골이 만들어진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들이 골짜기를 누비며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생각과 함께 인위적인 것들에서 해방된 것 같은 자유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사진애호가들은 오지 트레킹으로 많은 작품을 수확(?)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오지트레킹 코스로는 새이령과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꼽는다. 대간령이라고도 불리는 새이령은 높이 약 641m의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오래전 동서지역이 제대로 된 도로가 없을 때 힘센 보부상들이 쌀과 생선, 소금 등 생활용품을 담은 등짐을 지고 넘어가던 고개였다. 그러나 도로의 발달로 이제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니 야생화가 무성하고 겨우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좁은 오솔길만 남아 있다.
▲ 새이령 트레킹 코스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새이령을 걷다 보면 오래전 말들이 잠시 쉬어가던 마장터를 지나야 한다. 말들도 힘들게 짐을 지고 가던 길이었으니 이 길에 얼마나 많은 상업활동이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새이령은 6·25 동란이 있기 전까지는 현재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한계령, 진부령이나 미시령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한다. 지금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새이령 깊숙하게 들어가다 보면 오래전부터 있었던 낡은 집 하나만이 지나가는 사람을 반긴다. 움막이라고 보일 정도로 허름한 이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내게 야생열매로 담근 술이라며 한 잔 건네주었다.

새이령과 비슷한 형태의 코스가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에 있는 조경동이라고 불리우는 아침가리골이다. ‘아침가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밭(가리)의 크기가 아침에만 경작하면 더 이상 경작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다는 뜻으로 첩첩산중에 있는 아주 조그만 땅이라고 해서, 또 산이 높아 오전에만 해를 볼 수 있기에 점심 이후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와 그렇게 붙여졌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국가의 난을 피해 사람들이 깊은 산속으로 몰려들면서도 삶의 연명을 위해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을 찾아 터를 고르고 살둔, 월둔, 달둔이라는 3개의 마을을 이루었다. 평탄한 둔덕이라는 뜻의 ‘둔’에서 알 수 있듯이 크지는 않지만 농사를 지을만한 곳이다. 6·25동란 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때는 화전민이 많이 살아방동초등학교의 조경분교가 있었고 버스도 다녔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도로의 흔적만 있을뿐 불과 한 두 집만이 남아 숲 길을 오래 걸어 온 사람들의 벗이 되고 있다.

위치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로, 뜨거운 여름철에 시원한 계곡물 속을 걷는 특이한 즐거움이 있다. 숲이 있어 더위를 식힐 수도 있지만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계곡의 시원함을 느낀다는 희열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그러나 일반 계곡과는 달리 정비된 곳이 없어 계곡 야영을 즐기지는 못하며, 주말에는 오지 트레킹을 즐기는 단체 여행객들만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진동리 입구로 몰려든다.

약 15km정도의 긴 거리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산행을 하면서 울울창창 나무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 그리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워 매니아들의 추천을 받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농사를 짓는 곳이 없으니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아 계곡 옆을 걷거나 수면이 평탄한 곳에서는 신발을 신은 채 계곡 물속을 첨벙첨벙 걸으며 때론 물 속에 풍덩 빠지기도 하면서 가꾸지 않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이 곳을 가기 위해서는 일반 등산화 외에 샌들 등산화가 필요하고 여벌의 옷이 필요하다. 비가 올 때는 계곡으로 들어가면 위험하니 절대 삼가야 한다.

방태산에는 아침가리 뿐만 아니라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곁가리 등 깊은 계곡이 줄지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많아 좋다.

 


이밖에 오지 트레킹이라면 예상 가능한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6·25 동란 이후 민족상잔으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리산. 전쟁이 끝났어도 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공산주의자들이 게릴라 즉, 빨치산이 되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숨어 지내던 곳들이 지금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무성하게 자라는 숲들 속에서 묻혀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이 음식을 찾기 위해 깊은 산속에 살던 마을 주민을 찾아가고 또한 국군들도 찾아 다녔던 길들이 남아 있어 지자체에서 ‘지리산 빨치산길’이라는 코스를 만들어 애호가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로 복잡한 유명 트레킹코스보다 한적하게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코스는 낙엽송, 단풍나무, 전나무 등 하늘로 치솟은 울창한 원시림으로 가득해 걷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길이 험하지 않아 트레킹 초보자들도 무난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올 여름엔 서늘한 계곡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차가운 계곡물 속을 걸어가는 오지 트레킹을 떠나보기를 기대해 본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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