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
[정경석의 길]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
  • 송지숙
  • 승인 2018.01.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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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1994년 가을. 10년 전 결혼할 당시 서로 양가의 재정적인 도움 없이 결혼하고 싶어 신혼여행도 남들 다 가는 제주도도 포기하고 검소하게 결혼식을 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이후 직장을 다니며 안정적인 삶을 찾고, 해외 출장도 많이 다녔기에 적립해 놓은 항공 마일리지를 이용해 아내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여행을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는 패키지여행이라는 것이 별로 없던 시기이기에 둘이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떠난 미국 동부 여행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라 관광책자를 보고 브로드웨이가 있는 뉴욕 42번가에 가까이 있는 45번가에 이름도 그럴듯한 워싱턴 제퍼슨호텔로 한국에서 미리 전화해 예약한 후 찾아갔다. 

놀랍게도 호텔은 거의 여인숙 수준이었다.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방의 창문은 닫히지도 않았으며 군대 야전용 같은 침대가 있는 허름한 방에서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다음날 나이아가라 관광을 하기 위해 전화로 예약한 32번가 한인 호텔 앞까지 걸어갔다. 

나중에 현지 한인교포들을 만나고서야 얼마나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았다. 뉴욕의 새벽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범죄 소굴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여튼 나이아가라 관광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버스로 1일 관광 도중 브로드웨이를 지날 때 가이드에게 부탁해 차를 정지시켜 우리 둘만 내렸다. 말로만 듣던 환상의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걸었다. 높은 건물의 벽마다 그리고 낮은 빌딩의 옥상마다 커다랗게 붙어있는 뮤지컬 공연 대형 간판들.

미스사이공, 캣츠, 레미제라블, 그리스 등등 수없이 많은 뮤지컬들이 이 거리에서 기간을 정해놓지 않고 밤마다 펼쳐지고 있었다. 아내와 그 중 하나를 보기로 하고 마침 인근에 고양이 눈을 무척이나 크게 그려 놓은 뮤지컬 ‘캣츠’ 공연장이 있어 매표소에 물어보니 마침 가능한 표는 약 40불이나 했다. 

우리의 여행경비를 생각하면 큰돈이지만 ‘이곳까지 와서 이걸 안보면 차라리 비행기타고 미국을 오지 말지’ 하는 생각에 저녁시간 표 두 장을 흔쾌히 구입하고 남는 시간에 저녁식사를 인근 식당에서 햄버거로 대충 때우며 해결했다.

시간이 되어 극장 안에 들어가니 입구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미 좌석은 거의 차 있었다.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을 찾는 것이 관례지만 이들은 미리 와서 기다리는 습관 때문이리라. 빨간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작은 손전등으로 밝혀주는 불빛을 따라 자리를 잡으니 무대 바로 옆이었다. 

‘연주자들이 바로 앞에서 공연을 하겠지’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떨렸다. 무대에 커튼은 없고 곳곳에 뉴욕의 뒷골목을 그려 놓은 듯한 무대 인테리어가 관객들을 캣츠의 무대로 인도하고 있었다. 뉴욕의 뒷골목 같이 덕지덕지 붙은 광고물들, 온갖 세계적 브랜드로 누더기가 된 포스터들에 시선이 빠져 있었다. 

잠시 후 예고도 없이 시작된 공연은 우리 부부를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버렸다. 현란한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이 고양이 몸짓으로 슬금슬금 기어 다니며 바로 우리 앞에서 꼬리를 치며 웃음 짓고, 한 마리 두 마리씩 많아지더니 급기야는 온 무대가 고양이 천지가 되어 버렸다. 걷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고양이의 본능을 따라 하는지 네발로 기는 모습이 등뼈까지 고양이를 그대로 빼 닮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이전에 국내에서 이 뮤지컬을 보았지만 음악적인 면이나 무용 그리고 무대 장치 면에서 너무 부실해 무척 실망을 했는데, 이 공연을 보니 완전히 다른 음악적 분위기, 배우들의 무용,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무대 장면들, 의상 그리고 분장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다웠다.

특히 음악은 성악가 뺨치는 발성법과 기본기가 마치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입을 벌리며 듣고 있던 중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는지 모든 고양이 아니, 배우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나가버리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 몇 명이 올라와 공연 중인 무대에 줄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처음엔 무척 의아했으나 곧 그 기막힌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중간 휴식시간에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와 무대 세트들을 구경하고 잠시 후 무대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이젠 고양이처럼 네발로가 아닌 두발로 서서 손에는 팸플릿과 기념품을 들고 무대 위 그리고 객석의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는 자연스런 모습이 펼쳐졌다. 

비록 사진은 찍지 못하지만 인터미션에 관객들이 무대를 자유스럽게 오가는 한가한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

뮤지컬의 주제가인 ‘메모리’를 나이 든 고양이의 굵직한 베이스의 음성으로 들려주는 넘치는 감동이 지속되며 공연이 끝난 후 무척이나 아쉬운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극장 앞 길 건너편 보도에서 손님들 나오는 시간에 맞추었는지 흑인 밴드가 신나게 가두 연주를 하고 있다. 기타, 드럼, 색소폰, 트롬본 등으로 온 뉴욕의 밤거리가 흔들리도록 연주하고 사람들은 모여들고 앞에 놓인 모금함에 너도 나도 가면서 동전이나 1불짜리를 하나씩 놓고 간다.

한동안을 곁에서 구경하다가 밤이 늦은 것 같아 뉴욕의 전형적인 노란 택시를 타고 한인 호텔로 들뜬 가슴을 안고 돌아와 우리는 마치 뮤지컬의 고양이처럼 그 밤을 보냈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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