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포르투갈에서 만난 영화 ‘피아노’ 연주자
[정경석의 길] 포르투갈에서 만난 영화 ‘피아노’ 연주자
  • 송지숙
  • 승인 2017.12.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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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2016년 5월 중순,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미노 800km 트레킹을 마친 후 일반 여행자의 신분으로 탈바꿈했다.

대도시 숙소에서 까미노를 다녀 온 순례자들은 ‘베드버그’ 즉 빈대 때문에 받아주지 않는다 해서 등산 스틱을 3단으로 분리해서 보이지 않게 배낭 안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길렀던 턱수염도 모두 밀어버리고 때 묻은 등산화 신발이 위화감을 줄 것 같아 편한 신발을 샀다.

당초 한국에서 떠나올 때 여벌의 바지 하나는 평상복 디자인으로 된 것을 구입했었다. 그리고 상의도 현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랍풍의 셔츠 하나를 사 입었다. 

까미노 여행은 스페인의 땅끝마을인 피니스테라에서 끝내고, 포르투갈과의 국경도시인 비고를 지나 기차를 타고 포르투갈 북부의 포르투에 도착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포르투의 전철 지도를 보니 ‘Casa de Musica’라는 이름의 역이 관심을 끌었다. 숙소 안내자에 물어보니 그곳에 클래식 공연장이 있다 하기에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때마침 눈길을 끈 공연이 있었다. 마이클 니만의 피아노 독주회. 마이클 니만은 영화 ‘피아노’의 테마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평소 FM을 통해 익히 들은 바 있었다. 

홀리 헌터가 주연한 영화 ‘피아노’는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기 위해 아끼는 피아노만 하나 들고 어린 딸과 함께 뉴질랜드로 가, 그곳에 만난 원주민과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포스터에서 바닷가에 놓인 피아노 옆에서 주인공의 딸이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영화 내내 끝없이 흐르는 피아노의 연주가 기억 속에 각인되었는데 그 곡이 바로 마이클 니만이 작곡한 곡으로, 그가 직접 연주했다. 

 


인터넷을 통해 발견한 공연 정보에는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알 수 없어 예약도 할 겸해서 전철을 타고 직접 Casa de Musica를 찾았다. 한산한 매표소에서 저녁 표를 예약하며 ‘내가 음악회의 격식을 맞추지 못한 여행자 복장인데 입장이 가능하느냐’ 물어보니 상관없다 했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포르투 시내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공연시간에 맞춰 공연장을 찾았다. 클래식 전문 공연장 내부의 모습이 특이했다. 공연장 외부의 직선적인 건축양식이 내부 연주홀에도 적용됐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공연 안내원들이 안내하는 심플한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올라가 연주 홀에 들어가니 조금 낯선 구조였다. 공연 홀의 좌석이 맨 앞에서 뒤까지 중간 통로가 없이 모두 긴 통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대충 눈으로 좌석 수를 계산해보니 약 1,200~1,300석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무대에는 달랑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 그리고 벽에 스크린이 내려와 있었다. 무대의 천정 밑에 그다지 크지 않은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고 천정에 투명 스크린이 있기에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그게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등 연주의 성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음향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주회 시간이 가까이 오니 스크린에 영상이 비쳐졌다. 그런데 일상적인 모습이 계속 반복적으로 상영되는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연주회의 팸플릿도 없어 더욱 궁금했다. 

시작 시간이 10분이나 지나서야 연주자가 악보를 들고 입장하는데 복장이 통상 연미복을 입는 피아니스트의 복장이 아니고 편해 보이는 콤비 스타일의 일반 양복을 입었고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안경은 선글라스처럼 머리 위로 걸쳐 놓았다.

그리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영상을 보며 연주를 시작했다. 무성 영화에 피아노 반주가 있으니 비록 반복되는 영상이었지만 무언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영화 ‘피아노’ OST의 반복되는 리듬만큼이나 같은 리듬이 끝없이 반복되고 영상도 계속 반복되는 영상이라 금방 지루함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다른 영상과 연주도 첫 곡과 마찬가지였다. 주 멜로디가 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과 지루하게 반복되는 리듬의 연주. 그런 실험적인 연주가 무려 1시간 반 넘게 계속되고 피아노 옆 바닥은 연주할 때마다 떨어트린 악보가 수북하게 쌓였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연주자가 나와 관객들의 인사를 받는데 그가 관객에게 건성으로 손을 흔들고 겸손하게 보이지 않아 나의 공연관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물론 관객들의 표정을 볼 때 그리 감동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 연주와 상당히 달랐지만, 외국 여행 중 공연장에 직접 들어와 연주를 본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기에 기분은 좋았다.

직장 다니던 시절, 가끔 업무상 내게 하늘같은 임원들과 외국인들을 만나면 나는 늘 외국인들의 버릇없는 행동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그건 우리 한국인들만의 생각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행동이다.
여행은 이처럼 낯선 문화의 충격에 부딪히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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