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엘 마리아치
[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엘 마리아치
  • 송지숙
  • 승인 2017.12.0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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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1995년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데스페라도’라는 영화가 있었다. 1992년에 개봉한 ‘엘 마리아치’의 후속작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인공 ‘엘 마리아치’ 역으로 분해 기타를 하나 들고 노래하며, 기타케이스 속에 기타 대신 기관단총을 넣고 악당들을 상대로 활약하는 영화이다.

엘 마리아치는 멕시코의 떠돌이 악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기타 하나로 엘 마리아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적어도 4~5명이 그룹을 이루어야 하고 그 안에는 반드시 나팔수가 있어야 한다.

1991년 처음에 멕시코를 방문했던 날 저녁에 호텔 로비에서 청중이라고는 나 혼자 두고 기타를 치면서 열창하고 있는 한 명의 기타리스트를 보고 아주 인상 깊게 여겨 이후 멕시코를 재방문 했을 때는 꼭 그들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관광안내 책자에 엘 마리아치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가리발디 광장 방문과 극장식 쇼도 구경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 택시기사를 별도로 고용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밤 9시에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조용한 도시를 달리다가 멈춘 곳은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 있고 도로 변에 이태리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고대 건축물의 한 쪽이 세워져 있는 광장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내 걸음은 곡마단의 소리를 듣고 달려가는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치들의 음악에 이끌려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비록 어두운 밤이지만 광장에 펼쳐진 마리아치들의 무리에 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언플러그드 음악을 들려주는 악사들은 여기 저기 서성거리며 마치 인력시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처럼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복장으로 구별된다. 챙이 넓은 서부의 모자들 혹은 챙이 더욱 큰 산초 모자를 쓰고 검은 재킷을 입었고, 모양이 큰 나비넥타이나 머플러를 넥타이같이 맸다. 마치 보이 스카우트처럼, 바지의 양쪽이 위에서 아래로 사다리 모양의 흰색 실 혹은 금실이 죽 장식되어있으며, 대개 뾰족한 흰색계통의 구두를 신는다. 또한 대개 구릿빛 계통의 피부에 콧수염을 길렀으며, 체격은 통통한 편이며 서 있는 폼이 늘 선 채로 악기를 다루어서인지 반듯하다. 

악기들도 참으로 다양했다. 일반 기타를 비롯해 울림통 뒤가 산처럼 툭 튀어 나온 기타, 사이즈가 조그만 기타, 바이올린, 드럼,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소형 하프, 만돌린 등 시야에 즐비했다.

마리아치를 보러 나온 사람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 그들은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겐 자꾸 노래를 해 주겠다며 치근거렸다. 노래는 대개 2~3곡에 50페소를 받는다. 돈을 직접 내고 듣기도 하지만 조그만 일회용 컵을 하나 사면 음료수를 주면서 노래를 듣기도 한다. 

음악은 대개 4분의 3박자의 왈츠로 구성되며, 멤버들끼리 화음으로 노래하고 때로는 독창자가 중간 중간에 노래하기도 한다. 악기를 든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연주한다. 굳이 손님이 노래를 청하지 않아도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마리아치들의 모습은 젊었을 때 나의 모습을 연상케 해 한참을 쳐다보며 사진을 찍어 댔다.

광장에는 여러 개의 동상이 악기를 든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데 모두 전설적인 마리아치들의 동상이라 한다. 주위에는 극장식 레스토랑도 있어서 실내에서 마리아치들의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밖에서 보니 마리아치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여가수가 있으며 식사가 제공되기도 한다. 식사 없이 음료수만 시키는 것으로도 입장이 가능하다.

엘 마리아치라는 극장식 레스토랑의 쇼를 보기 위해 들어가 앞자리를 배정받고 주위를 보니 이미 일층은 손님들로 가득하나 이층은 모두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날은 단체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가족들 혹은 친구들끼리의 모임들이 보였으며, 바로 내 앞에는 젊은 연인이 다정하게 꼭 붙어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자 악단들이 무대 위의 계단 양 옆으로 늘어서고, 한 쪽 계단에는 기타류 그리고 다른 쪽에는 바이올린, 그리고 위에는 트럼펫이 자리 잡았다. 바이올린도 마이크가 부착되어 노래하는 소리와 현의 소리까지 크게 들리게 했다.

곧 이어 마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을 알리던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검은 옷에 커다란 모자 그리고 콧수염의 잘 생긴 남자가 경쾌한 걸음으로 올라와 리듬감 있는 스페니쉬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노래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무척이나 흥겨운 멜로디가 계속되고 고전 의상을 입은 남녀 두 쌍이 올라와 신나게 탭 댄스와 넓은 치마를 자랑하는 고전무용을 펼친다. 아주 빠른 템포의 노래는 장내의 손님들을 열광케 했다. 

곧 이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목동들의 밧줄 묘기가 펼쳐졌다. 밧줄로 원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그 원을 온 몸으로 통과하기도 하며, 또 온 몸에 휘 감기도 한다. 커다란 줄이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 안에 또 다른 원을 만들어 돌리는 묘기를 보이며 관중들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다. 젊은 여가수가 팝 스타일의 노래를 열창하기도 하고 멋들어진 콧수염의 남자가 검은 복장으로 무대에 올라와 한국의 성악가 김동규씨와 비슷한 목소리로 성악 무대를 보여줬다. 

남자 가수의 노래가 끝나는 피날레 부분 즈음 사회자가 내 앞에 와서 나에게 같이 노래하자고 유도하기에 서슴지 않고 큰 목소리로 노래해 주기도 하고 멕시코 고전 의상을 입은 장내 기념품 파는 아가씨와 같이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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