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흑인밴드와 듀엣
[정경석의 길] 여행 중 만난 음악 - 흑인밴드와 듀엣
  • 송지숙
  • 승인 2017.11.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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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1996년도 어느 날 아프리카 중서부지역의 가나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가나 초콜릿으로 유명한 그 나라는 영어가 모국어이고 아프리카 중 유일하게 국민의 70%가 기독교인 국가다. 주일이면 구멍이 숭숭 뚫린 교회의 흙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흥겨운 찬양을 들을 수 있다.  

당시 국내 플랜트건설업체인 S건설을 다니고 있었는데, 가나의 정유공장을 보수하는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우리 회사 직원들이 공사를 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 프로젝트 감리 담당으로 잠시 출장근무를 하고 있던 때의 이야기다.

열대의 뜨거운 태양열에 달궈진 철구조물 사이에서 일을 하면 땀으로 온 몸이 초주검이 되니 일과 후 맥주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녁에는 치안 때문에 밖에 나갈 형편이 못 되니 호텔 내에서만 서성거려야 했다.

호텔은 정원이 넓고,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바로 옆에 있어 앉아만 있어도 저녁 소일거리는 충분했다. 식사를 외부에서 하고 돌아온 날은 대개 맥주 한 병 시켜서 정원에서 식사하거나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원의 한편에 있는 ‘피자헛’은 외부 가건물 모습이 조금 특이했다. 대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피자헛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지붕은 똑같은데 그곳은 빨간 지붕 대신 밀짚으로 피자헛의 지붕과 같은 모양을 만들었으며, 피자를 흙으로 만든 화덕에 굽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그 피자헛 옆에 작은 무대에서는 매일 흑인 밴드가 각종 음악을 연주했다. 특히 매주 수, 목요일은 흑인 여자 가수가 한 명 낀 4인조 밴드가 귀에 익은 팝송들을 연주하기에 혼자 음악을 들을 때 곡이 끝나면 조그마하게 박수도 쳐주고 가수의 감사 목례도 받곤 했다.

어느 날 밖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호텔 정원에서 직원과 함께 흑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귀에 익은 팝송인 ‘Love Me Tender’를 재즈 리듬으로 흑인 여가수가 부르고 있어 귀가 솔깃해졌다. 보통 흑인들의 노래는 1절, 2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같은 노래를 매번 다른 애드리브를 넣어가며 연주했다.

그날은 나에게 무슨 객기가 동했는지 음악을 듣다 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에게 천천히 걸어가서 손을 내밀어 같이 노래할 수 있느냐는 표정을 지으니 옆에 기타를 치던 남자가 얼른 마이크 하나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가수의 노래에 내가 화음을 맞추며 조용히 따라 했더니 무척 좋아하며, 자기가 한 절을 부르고는 나에게 계속하라고 권하기에 나 또한 멜로디로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몇 번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노래는 끝났고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앙코르를 청했다.

노래를 자청해서 하긴 했지만 조금 겸연쩍어 무대에서 내려가려 하니 가수가 한 곡 더 하자며 내 팔을 잡았다. 내가 아는 영어 팝송을 몇 개 말했더니 잘 모른다 하다가 그 중 ‘Amazing Grace’라는 흑인 영가를 같이 하자 했더니 금방 오케이 답변이 나왔다. 하긴 그들의 아리랑 같은 노래인데 모를 리가 있나?

반주가 나오고 선창으로 여가수가 흑인 특유의 재즈 멜로디를 불렀다. 본인이 한 번 하고는 나에게 손짓으로 권하고 내가 노래할 때 애드리브로 화음을 맞춰주고, 반대로 가수가 노래할 때 내가 화음을 맞추는 등 서로 음악으로 교감했다.

그러다 다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여가수에게 부르지 말라는 손시늉을 하고는 이 노래를 찬송가에 있는 한국어 가사로 불렀더니 가수가 순간 당황하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이 퍼졌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처음 보는 한국인이 내게 인사를 했다. 이 지역 한인교회 목회자인데 이 호텔에 차 한 잔 마시러 왔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마이크로 한국 찬송가가 들려서 놀라웠고 반가웠다고 했다.  

그 다음날부터 호텔에서 일하는 웨이터들에게 지난 밤 노래로 인한 나의 인기가 아주 좋았고, 아침 식사 시 직원들이 내게 특별 서비스 메뉴를 가져다주는 등 출장이 끝날 때까지 특별 서비스를 누렸다.
 
음악이 있는 여행이 좋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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