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빛나라의 LAW칼럼]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미투 피해자 보호
[오빛나라의 LAW칼럼]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미투 피해자 보호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8.03.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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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사무소 인정 대표변호사 오빛나라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미투(#MeToo)운동이 정치, 경제, 문화계 전반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유명 남성 배우가 여자 후배 배우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영화감독과 남성 주연 배우가 영화를 촬영하는 기간 동안 여성 주연배우를 여러 차례 성폭행했고, 대권 유력 주자가 여성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등 여러 피해자들의 고백들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한국 사회에 성폭력이 널리 퍼져있었고 명망이 높은 남성들조차 성폭력을 자행해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오랜 시간 홀로 고통 받았을 피해자들을 외면하거나 방치했던 건 아닌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용기 내어 말하는 데 법적으로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무고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이다.

무고죄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허위의 사실이란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사실을 말하고, 신고 사실이 허위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인 증명이 있어야 하고, 신고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는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는 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상태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사실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판례는 허위 사실을 진실로 오인하고 공익을 위하여 적시한 경우에 행위자가 진실한 것으로 믿었고 그렇게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무고죄는 실제로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해 가해자가 아닌 사람을 가해자로 몰아 그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는 점에서 처벌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실제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범죄 사실에 대해 사실대로 대중에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여 오히려 피해자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벌규정이 미투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적시한 사실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지만, 진실성과 공공성을 증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쟁송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2차 피해를 입게 되고, 오히려 자신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 위헌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16. 2. 24. 2013헌바105, 2015헌바234).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반박문을 게재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하거나, 정정·반론·추후 보도를 청구하는 등 형사처벌 외에 덜 제약적인 명예훼손 구제에 관한 제도들이 존재함에도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징역형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등도 진실한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인정하지 않고 있고, 2011년과 2015년 유엔은 한국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했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의 반대의견(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강일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실한 사실은 자유로운 의사형성과 진실 발견의 전제가 되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진실한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한 사실 중에서 개인의 내밀한 사적 영역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같이 인격권 보호를 위하여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부분에 한하여 금지하면 충분하다. 심판대상조항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킬만한 사실이라면 비록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도 모두 객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도록 규정하여 인격권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진실한 사실에 대한 표현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최근 미투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형법,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정보통신망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 등과 관련하여 국회 개정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성폭력 범죄 피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피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처벌대상에서 제외하고, 성폭력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금지하는 규정을 구체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성폭력 풍토는 믿고 싶지 않은 어두운 현실이다. 이러한 관행을 개선해 나기기 위해서는 진실을 공론화해서 문제점을 직시하고, 다 같이 힘을 모아 해결책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고, 오히려 피해자가 처벌을 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하루 빨리 제도가 마련되어 미투 피해자들이 숨지 않아도 되고 당당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오빛나라 변호사 약력>
-現 법률사무소 인정 대표변호사
-前 법무법인(유한) 현 변호사
-前 법무법인 피플 변호사
-사법시험 54회 합격
-사법연수원 44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안양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 졸업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정회원
-환경운동연합 환경법률센터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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