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 한국의 자살예방 대책 이대로 좋은가?
[생명존중] 한국의 자살예방 대책 이대로 좋은가?
  • 이성교
  • 승인 2017.12.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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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섭 전 서강대 총장ㆍ서울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총재

“축적되어온 자살기도가 아니라 순간적인 충동자살 행위를 차단하는 자살예방 차원의 대비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베이비타임즈=이성교 기자] “현실적으로 자살의 대부분은 자유로운 죽음이라기 보다 막판에 내몰린 죽음이라는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최창섭 전 서강대 총장은 한국의 자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총재를 맡고 있는 최창섭 전 총장은 서서울생명의전화가 주최하고 한국자살예방센터와 베이비타임즈가 공동주관해 11월 3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한국의 자살예방 현황과 미래과제’ 주제로 개최된 ‘제10회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세미나’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최창섭 전 서강대 총장이 11월 3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한국의 자살예방 현황과 미래과제’ 주제로 개최된 ‘제10회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는 서서울생명의전화가 주최하고 한국자살예방센터와 베이비타임즈가 공동주관했다.

 


최 전 총장이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발표한 ‘한국의 자살예방 대책 이대로 좋은가?’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살다보면 희로애락 속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순간적이라도 ‘이 세상 더러워’ ‘다들 꼴 보기 싫어‘ ‘아니 이럴 수가 있나’ 하며 실망과 분노 내지 격한 심경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상식적인 차원의 극단적인 길을 택하게 될 일반적인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해 본다면, 건강·돈-재정·가정불화·이웃-인간관계·직장-일터·공사 간에 얽히고 설키며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이 떠오른다. 이미 잘 알려진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단계에 연계시킨 원인분석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기본적인 ‘결핍요구’ 단계에 관련될 것이고, 물리적인 충족단계를 넘어선 계층의 경우는 주변의 인정이나 존경 내지 ‘자아실현’ 미충족에서 오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과론보다는 원인론 내지 자살로 향할 수밖에 없을 주변상황론이 중요하다.

▲ 매슬로의 욕구단계

 


며칠전 상가 임대관련 너무나도 억울한 상황에 몰리다 보니 순간적인 충동자살을 택한 사례에서도, 축적되어온 자살기도가 아닌 상태에서 자살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경우에서 보여주듯 자살예방 차원에서 각급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외형적으로 보면 전혀 자살할 사람이 아닌데 하고 모두가 의아해 할 정도로 사회적 경륜이나 경제적 위치나 정치적 지도층에 있는 소위 유명인사 축에 드는 사람들의 자살 경우를 접하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최근에도 법조계의 검사가 또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상식적인 차원에서 해답을 얻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미친다. 어느 날 갑자기 본의 아니게 모든 게 ‘까발려지는’ 지경에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심정에 순간적인 충동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식의 자문자답도 해본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로 지난해 1만3,000여명, 하루 평균 37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잃었으며, 산 사람의 자살로 영향을 받는 가족과 지인을 포함하며 한 해 약 8만 명 이상의 자살 사별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자살의 대부분은 자유로운 죽음이라기 보다 막판에 내몰린 죽음이라는 차원에서는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자살을 개인과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며, 자살 사별자들이 고통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는 공동체적 책임도 거론되는 것이다.

분명 삶은 개인의 길인 동시에 공동의 길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라 보기 때문이다. 작은 나를 넘어 여럿이 함께 가는 길, 그 길이 공동체의 길이요, 우리는 각자 서로를 통해 더 큰 것을 이루고, 더 큰 나를 만나는 일에 자신을 던지면 좋겠다는 생각에도 이른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가는 존재 아니던가. 이 시대 함께 살아가며, 공동체의 의미를 살피고 우리 스스로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찾아야 하기에 개인과 사회, 교회, 정부 등 모두가 더불어 풀어가야 할 공동의 길이라 보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예산 지원이나 인력 투입, 사회 공론화 등에 많은 투여를 해왔으며, 나름대로 많은 성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항상 성과 평가와 기록, 홍보와는 괴리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차원에서는 보다 실효성있는 방안 모색을 향한 지속적인 선의의 채찍질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WHO의 권장 사항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평범한 제안으로 치부될 수도 있으나 명확한 목표, 위험요인 및 방어요인, 대상별 효과적 개입 방법, 집계시스템 개선 및 연구, 모니터링 및 평가의 구체성을 제시하고 있음에 유의하면서 실천에 유의했으면 한다.

‘XYZ’를 얘기하기 전에 우선 ‘ABC’부터 실천에 옮기려는 자세를 확고히 하면서 ‘DEF’를 향해 가는 정도와 순리를 강조하고자 함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We don't do it, because we already know it”이라는 ‘알음’ 병이라는 고질병에 걸려 있는 듯도 싶다. 뻔할 ‘뻔’자 알고 있는데 더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 하니 보다 높은 실행의 행보로 옮겨지겠는가 말이다.

‘알고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얼마나 잘 실천에 옮겨졌느냐’이다. 첫째도 실천이요, 둘째도 실천이요, 셋째도 실천이다.

▲ 서서울생명의전화가 주최하고 한국자살예방센터와 베이비타임즈가 공동주관해 11월3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한국의 자살예방 현황과 미래과제’ 주제로 개최된 ‘제10회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경청하고 있다.

 


WHO의 인구학적, 경제학적, 사회적, 정치적 요소들을 독립변수로 활용하고 있음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흔히 자살하면 청소년층이나 독거 노인 등을 떠 올리는 경향이 높은데, 특히 비교적 높은 율의 ‘지도층’ 자살의 경우 정치적 요인 작용의 변수를 심도있게 감안해야 할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위험군에 ‘퇴역군인’ 포함도 심도있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가 퇴역 군인을 포함한 공복(公僕)에 대한 인식이나 ‘그들’(MIU: man in uniform)에 대한 퇴임 후의 대책마련에 얼마나 사회적인 관심을 보여줘 왔는지 의미있는 자문을 해볼 때다.

일본의 인재양성에도 ‘쫑긋’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땜방질’하는 즉흥성이 아닌 지속적인 인재양성의 방안을 그것도 형식주의나 보고용이 아닌 실용적인 면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제까지 관례에 비춰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내지는 회의심이 범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음에도 유의했으면 한다.

아무리 정책 입안이 잘되고, 예산 뒷받침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해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생명존중에 대한 조기 교육(교육부), 대대적인 범 사회적인 매체홍보(캠페인), 대학교육 특히 교양분야에 ‘주검학’,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도입, 종교단체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 지속적인 입법·사법부의 법적인 뒷받침, 사회적 상부상조 문화 조성(품앗이, 인성 등), 자살자 개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질적 심층 분석 자료 마련, 그리고 무엇보다 관련자들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난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여 자세와 집행상의 연계성 및 조직성 개선 등은 백번을 되풀이해도 과언으로 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장기적인 측면에서 범사회적인 ‘품앗이 운동’ 전개와 ‘인성교육’ 아니 ‘인성 배움’ 대한 재조명과 감성적 접근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나눔과 배려, 상부상조와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지역문화의 되살림과 재현을 통한 정신문화 함양을 되짚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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