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부족해 못 논다고요? ‘자유롭게 놀 환경’이 더 중요하죠”
“놀이터 부족해 못 논다고요? ‘자유롭게 놀 환경’이 더 중요하죠”
  • 이진우
  • 승인 2017.11.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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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호수공원서 ‘놀이-공공디자인 접목’ 안애경 아트디렉터 인터뷰‘장소-안전-관’에 갇힌 놀이터 아닌 ‘아이 자율-학교 공간’ 놀이 필요 
▲ 공공디자이너 겸 아트디렉터 안애경 씨.

 


[베이비타임즈=이진우 기자] 지난 11월 24일 서울 상암동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던 서울시의 놀이정책포럼에서 ‘놀이를 통해 본 북유럽 아이들, 한국아이들-서서울호수공원과 북유럽 사례’ 주제발표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놀이와 놀이터의 기본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발표자인 안애경(Amie Ann) 씨는 핀란드에서 공공디자인과 아트디렉팅을 공부한 전문가로서 북유럽의 개방적이고 자율적 문화에 기반한 놀이와 놀이터를 소개했고, 한국에서 서서울호수공원을 무대로 지역 아이 및 부모들과 진행했던 놀이와 공공디자인을 접목시킨 사례를 설명했다.
최근 서울시 등 국내 지방정부 차원에서 유네스코 아동친화도시 인정, 어린이의 놀 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안애경 씨로부터 아이들을 위한 바람직한 놀이와 놀이터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들어본다. 

Q. 지난 24일 놀이정책포럼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인위적, 인공적 놀이터를 늘려주기 보다 주변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를 강조하셨는데, 활동하셨던 핀란드 등 북유럽의 놀이터가 한국의 놀이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 놀이 또는 ‘아이들이 논다’라는 개념 자체부터 다른 것 같아요. 놀이, 논다는 말은 굳이 놀이터에 가거나 놀이시설을 사용하지 않아도 아이나 어른이나 ‘몸을 움직이고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이에요. 
반면에 한국에서는 놀이터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획일화 하고, 장소성에 제한된 시각으로 놀이를 보고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내버려뒀을 때 본능적으로 어디서나 잘 놀거든요.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잘 논다고 봐야죠. 집 앞이든, 동네 길목이든 아이들에겐 모두 놀이터처럼 생각하지요.
따라서 ‘놀이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를 위한 일(놀이)에 어른의 생각과 잣대,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경직된 힘이 개입돼 있지 않나 싶어요.
북유럽에서 놀이터는 대부분 원래 지형의 생김대로 울퉁불퉁한 모습 그 자체로 아이들이 모험을 즐길만한 곳이지요.
한국에서 ‘위험하다’고 우려되는 기준이 북유럽에서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도전하고 체험할 만한’ 기준점이 된다는 게 근본적인 차이인 것 같아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어릴 때부터 직접 몸으로 터득하면서 몸의 균형과 타고난 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유럽 어른들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 안애경 씨가 아이들과 함께 공공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안애경 페이스북 

 


Q. 하지만 우리나라는 명문학교 진학을 통한 출세주의가 너무 팽배해 있어 유치원이나 학교가 ‘입시 양성소’로 전락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어린이의 ‘놀 권리’보다 ‘공부할 의무’만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라 북유럽 놀이(놀이터) 개념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같은 한국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A. 앞에서 언급했듯이 ‘논다, 놀이’를 받아들이는 사고를 처음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도 공부를 놀이처럼 생각하는 아이나 어른들이 분명 있다고 봐요. 즐거운 공부도 놀이다. 놀이라는 형태는 결국 즐거움을 말하며 몸속 에너지가 분출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학교 자체가 즐거우면 바로 놀이터이죠. 학교 가는 일이 즐거우면 놀이를 즐기는 공간이기에 학교 생활에서 아이들의 감성과 학업 능률이 함께 오르겠죠.
북유럽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하도록, 교실에서 더 이상 지루한 학습이 이뤄지지 않도록 학교 공간과 교실 환경을 매우 유희적인 형태로 바꾸어 나가고 있어요.
즉, 아이들은 카페 같은 분위기의 학교 환경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자유롭고 유쾌한 공간체험을 하면서 즐거운 학교공동체 생활을 배워간다.
이같은 ‘유희적 교육 환경’은 북유럽 유아교육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어요. 취학전 아이들의 주변 환경이 그냥 일상의 놀이터로 간주되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굳이 놀이터와 일상을 구분 짓는 사고나 행위, 정책은 어쩌면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기본철학의 부재나, 교육 또는 사회에 미치는 놀이의 중요한 영향을 애써 외면하려는 기성세대나 위정자들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 봐요. 
Q. 한국적 놀이문화의 한계 속에서 다행히 서울시의 창의적 놀이터 만들기, 오산시의 플레이시티(Play City) 조성 등 ‘어린이의 놀 권리’를 차츰 수용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국가나 지자체, 부모, 그리고 권리주체인 어린이 세 당사자들이 ‘놀 권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까요.
A. 사실 개인적으로 ‘놀 권리’를 새삼 이슈화 하는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것은 권리까지 주장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놀이 문화나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놀이는 너무나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구현될 수 있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담긴 놀이도 있어요. 지나치게 생활환경에서 놀이터를 구분짓는 ‘관 주도의 놀이 행정’에 관심을 모으고 집중하는 모습이 오히려 우려가 돼요.
놀이는 생활이 크고 작은 형태로 일상 가까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봐요. 인간은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른 반응을 하며 살지요. 관이 주도해 움직이는 놀이터는 지극히 외국 놀이터 모범사례의 일부 겉모습만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여요.
왜? 어떻게? 이런 물음과 배경에 고민과 의문 없이 너무 쉽게 남의 사례를 이슈화 하고 매몰될 경우 그 이면에서 놓치는 우리 고유의 문화,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간파해야 해요.
교육당국과 어른들은 지금 놀이터를 즐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과연 ‘놀 권리’라는 말이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다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아이들의 놀 권리가 박탈 당한 원인이 놀이터가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자유로운 사고, 자율적인 활동이 제한돼 있어요.
다시 말해, ‘놀이터가 없어서’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이 형성되지 못해 어린이의 놀 권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나 먼저 살펴보는 작업이 먼저라고 봐요. 
놀이와 놀이터의 진정한 사회적 의미는 아이들이 유희를 통해 사회를 알아가는 공간(장소)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어요.
따라서 놀이터를 유행하는 어떤 형태와 구조물을 배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길 바래요. 어린이의 놀 권리는 말 대신에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본권리부터 먼저 보장돼야 실현된다고 믿어요. 놀이는 그다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고요. 
▲ 안애경씨가 서서울호수공원에서 아이들과 야생화와 돌맹이로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안애경 페이스북

 


Q. 공공디자이너, 아트디렉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개인적으로 놀이에 관심 갖게 된 배경과 국내외 활동을 소개해 달라.
A. 사실 디자인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시 안에 교육활동을 포함하면서 자연스럽게 즐거운 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고 실천하게 됐어요. 놀이에 대한 관심을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늘 ‘유희적인’ 생각과 요소들을 전시 개념에 접목해  아이디어를 만들고 기획하지요.
한국에서는 ‘놀이 큐레이터’라는 말이 있던데, 굳이 놀이에 큐레이터란 용어를 왜 붙였을까 생각도 들고요. 놀이 큐레이터라기보다 아마 코디네이터 개념에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교육은 심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놀면서 활동하는 가운데 능률이 오른다는 점에서 예술교육활동을 전시 안에서 풀어내고 있을 뿐이죠.
향후 개인적 계획은 늘 그랬지만 공공적인 시각에서, 공공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공론화 하는 작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내년에 북유럽 교육철학에서 기본이 되는 ‘놀면서 배우는(playing and learning) 행복한 사회'가 무엇인지 통합적 관점에서 전시나 세미나·워크숍을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또 그동안 준비해 오던 국제문화교류 차원의 크고 작은 예술 프로그램을 서울과 광주에서 진행할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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