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섬 트레킹
[정경석의 길] 섬 트레킹
  • 송지숙
  • 승인 2017.08.0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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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벼랑 위의 오솔길을 걸으며 사방을 둘러 보아도 보이는 것은 외국에서 보았던 파란 눈동자를 가진 아가씨같이 파란 바다와, 작은 섬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섬을 덮어 버리는 파도의 모습을 보며 가수 정훈희가 불렀던 가요 ‘무인도’가 흥얼거려진다.

시야를 조금 올리면 보이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 그리고 아주 멀리 세상을 반으로 가른 잘 깎은 보석의 선 같은 아름다운 수평선을 보며 조물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수에서 좀 떨어진 섬, 금오도 비렁길의 깎아 지른 벼랑 위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 미역널방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이다. 여수에서는 벼랑을 ‘비렁’이라 부른다.

섬의 주민들이 낚시꾼을 데려다 주기 위해 만든 절벽의 능선길은 이젠 외지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 걷는다. 단체 관광객들은 잠시 걷다가 다시 다음 배를 타고 나가버리지만, 이 곳에서 특산물인 방풍나물로 만든 칼국수와 싱싱한 바다 생선을 재료로 한 진수성찬의 저녁을 즐기며 숙박하는 트레킹을 즐기면 한 개의 섬을 통째로 가질 수 있어 좋다.

벼랑 아래 저 먼 곳 작은 바위 위에 낚시꾼 한 명이 홀로 선 채로 긴 낚싯줄을 바라보며 가끔 팔을 공중으로 들어 본다. 아마 배를 타고 와 저 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그는 낚시를 즐기고, 나는 그를 보는 것을 즐긴다. 가끔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뛰어 올라 날짐승들의 영역에 힘차게 도전해 보고, 부리가 긴 새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바다를 침범한다. 분명 낚시꾼은 긴 부리를 가진 새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어둠이 찾아왔다. 인적이나 기계음 대신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밤. 맑은 도심 밤하늘에서는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던 별이 그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이 곳 섬마을의 하늘에 온통 반짝이는 은빛 수를 놓았다. 민박 집 마당에서 보이는 밤바다에는 먼 곳에 있는 섬에서 보이는 작은 빛만 반짝거릴 뿐이다. 태초의 고요함 속에 나는 아담이 되어 버렸다.

총 트레킹 거리 약 20km에 불과하지만 여수 왕복 운항시간을 고려하고, 산과 바다를 여유있게 즐기는 느긋한 트레킹을 위해서는 2박 3일은 고려해야 한다.

▲ 여수 금오도 비렁길 안내표지

 

▲ 여수 금오도 비렁길에서 바라본 드넓은 파란 바다

 


서해안에서 트레킹을 위한 섬들을 추천한다면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서해의 끝없는 갯벌에 둘러 쌓인 작은 섬 4형제가 있다. 서로 지척의 거리에 있는 4개의 섬인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 중 말도는 북한과 지척에 있는 섬이라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강화도 나들길의 코스이기도 한 주문도와 볼음도는 이정표나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어부들이 일하는 바닷가는 늘 한가하고 섬의 한 켠에 흰모래 해수욕장이 있으며, 조용한 야영을 할 수 있는 여름피서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바닷가에 있는 기기묘묘한 바위를 건너 뛰며 걷고, 특정한 곳은 물이 빠진 드넓은 갯벌 위를 걸어도 좋다. 여름에는 어부들이 막 잡아 온 각종 생선으로 요리한 음식들이 맛있고, 겨울에는 방금 채취한 싱싱한 굴과 소라를 저렴한 가격으로 실컷 먹을 수 있다.

특히 이 곳에서는 트레킹하는 즐거움뿐 만이 아니라 백합 또는 상합이라는 큰 조개를 캐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곳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이 조개는 하루에 두 번 썰물 때 끝이 안 보이는 갯벌에 경운기로 약 30분간 타고 나가면 주민들이 빌려 준 도구를 이용해 초보자도 쉽게 갯벌을 더듬고 파헤쳐 캘 수 있고, 해감할 필요가 없이 깨끗하여 즉시 먹을 수 있다.

사면이 바다인 특성상 방풍림이 잘 되어 있고 그 사이의 길을 잘 정비해 놓아 한여름에도 솔바람이나 혹은 밀물일 때는 둑위를 걸으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 제주 추자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전경

 

▲ 제주 추자도 올레길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멀리 남쪽으로 가보자. 목포나 완도 여수 그리고 제주항에서도 갈 수 있는 추자도에는 제주 올레길의 일부인 추자도 올레길이 있어 작은 섬 안에서 사면으로 망망대해를 보며 걸을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만들어 놓은 ‘나바론하늘길’이라는 벼랑길에 올라가면 제비도 쉬어 갈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있어 좋다.

이른 아침 선착장에 어부들이 하루를 준비하고 오후쯤 배가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의 항구로 뱃고동을 울리며 들어올 때면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걷고 보람을 느끼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이 섬트레킹의 즐거움이다. 내륙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해안가는 시멘트 구조물로 잘 정비되어 있는 반면 섬에서는 모래나 칠면초와 함초가 가득하게 피어 있는 갯벌 위를 걷고 혹은 수 억년의 지각변동으로 저절로 새겨진 온갖 무늬의 바위 위를 걸으며 최대한 자연의 모습대로 보존된 길을 걷는 느낌은 내륙의 해안과 완전 다르다.


요즘은 서해의 대부도, 제부도, 석모도 등과 남해의 많은 섬들이 다리를 놓아 육지와 연결된 곳들이 있어 섬 같지 않은 곳들도 많다. 젊은 시절 배낭을 메고 텐트와 온갖 먹을 것들을 챙겨 배를 타고 다녔던 섬들이 모두 일일 생활권이 되어 버려 덕분에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울러 그런 곳에 대부분 트레킹 코스들이 있어 한 곳에 머물며 즐기는 일반 캠핑보다 자연을 즐기고 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걷기 매니아들이 여가활동과 건강삼아 부지런히 여행을 떠나고 있다.

▲ 청산도 슬로길의 여유로운 모습.

 


이 외에 서편제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청산도 슬로길,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 굴업도, 야생화가 좋은 서해의 풍도와 등산코스가 좋은 장봉도, 걸어야만 제대로 섬의 이름이 가치가 있음을 아는 동해의 울릉도, 눈이 시원한 통영의 비진도 등 섬에서는 내륙에서 볼 수 없는 비경이 많다.

적어도 1박 2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섬트레킹은 제일 먼저 날씨예보를 확인해야 한다. 날짜를 미리 정해 놓았다고 날씨와 관계없이 무작정 떠나면 고립되어 낭패보기 일쑤다. 떠나자. 이 강산의 모든 영토에 발이 닿는 곳으로….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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