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북앤스토리] 무진기행
[이봉수의 북앤스토리] 무진기행
  • 온라인팀
  • 승인 2016.10.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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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진기행 / 김승옥 지음 / 민음사 출간

 

김승옥 지음 / 민음사 출간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던 것이다.’

–무진기행 중에서 발췌-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면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해도 거리낌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특히 틀에 박혀 있는 마네킹 같은 행동을 보여줘야만 하는 곳과는 달리 엄마의 품 속 같은 고향은 자신에게 익숙한 곳이기에 거침없는 행동과 상상을 하여도 수용되는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아우라를 펼치기에 충분한 곳이다.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해낼 수 있는 남자는 고향으로 짧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이모와 학교 교사인 후배와 세무 공무원으로 출세하려는 친구와, 후배와 모교에서 함께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그 곳의 이름은 무진(霧津)이다. ‘안개 나루’란 뜻을 가진 곳에서의 남자의 기행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별하기 어려운 안개 같은 불투명한 시간을 흩뿌리듯 보내고 도망치듯 무진(霧津)을 떠난다.

‘무진기행’은 1964년에 발표된 단편 소설인데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통금사이렌, 전보’ 같은 단어만 없었다면 현재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특별히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처음 글을 읽으면서 영화 도가니의 첫 부분이 오버랩 되었다. 같은 도시 이름과 안개로 시작되는 두 이야기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감히 상상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부터 앞을 막았던 안개는 다음 날 아침이면 또 다시 나타나는 새벽 안개처럼 또 다른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안개는 안에 있는 사람도 밖에 있는 사람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안개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사람도 쉽게 길을 찾지 못하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대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바깥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를게 없다. 안개는 사람들에게 기대와 두려움 상상을 하게 하는 몽환의 공간인가 보다.

작가가 말하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霧津)이 있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안개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그래서 그곳에서는 엉뚱한 용기를 내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자신의 감수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 이봉수 AVA엔젤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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