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존속살해와 효심(孝心)
[김동철칼럼] 존속살해와 효심(孝心)
  • 김동철
  • 승인 2016.09.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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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용돈 2,000원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척추협착증과 뇌병변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53)를 밥상 다리와 효자손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A군(14)이 구속됐다.

인천의 한 경찰서에 따르면 A군은 아버지를 폭행한 뒤 집에 있던 현금 1,000원을 가지고 나가 인근 PC방에서 3시간 동안 있다가 돌아와 아버지가 숨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A군은 10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단둘이 원룸 주택에서 살고 있었으며 지난해 중학교 진학 후 유급돼 올해 학기 초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아 유예처리됐다. A군은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로 병원에서 2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사건. 어머니(53)와 이모(61)를 흉기로 살해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 유성경찰서는 존속살해 혐의로 B군(19)을 검거했다. B군은 어머니와 이모를 살해하기 전 아버지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B군이 “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귀찮아 반찬 투정을 하며 화를 내다 홧김에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함에 따라 진위 여부를 확인 중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달 일어난 10대의 존속살해 사건이다.

입시교육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게다가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사춘기에 인륜과 도덕 즉 인성을 배울 기회가 좁아지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행동 기준이 모호해졌다. 그래서 사춘기의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火藥)과 같다. 가정이 해체되고(이혼율 OECD 국가 중 1위) 가장(家長)의 권위가 사라진 이 마당에 누구를 탓을 수 있으랴.

부모와 자식은 천륜(天倫)으로 맺어진 독특한 관계다. 그래서 꼭 지켜야 할 기본 도덕이 있게 마련인데 10대에 의한 존속살인이라는 불상사가 계속되고 있다. 인성교육이 사라진 결과는 이와 같이 참담하다.

이 대목에서 진정한 효자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임진왜란 7년 동안 그가 쓴 난중일기에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글이 107회나 나온다.

1589년 10월 류성룡은 우의정 겸 이조판서가 되었고, 류성룡의 천거에 의해 이순신은 정읍 현감(종6품)이 되었다. 과거 급제 후 14년 만에 현감이 된 장군은 평소 마음의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두 형 희신(羲臣)과 요신(堯臣)의 아들인 조카들 일이었다. 그는 어머니 초계 변씨와 두 형수 및 조카와 아들, 종 등 모두 합쳐서 24명의 가솔(家率)을 데리고 현지에 부임했다. 그러자 너무 많은 식솔을 데려간다며 ‘남솔(濫率)’ 즉 가속(家屬)을 많이 데려가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이충무공행록이다.

“이순신이 눈물을 흘리며, ‘내가 차라리 남솔의 죄를 지을지언정 이 의지할 데 없는 어린 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듣는 이들이 의롭게 여겼다.”

진나라 병법가 황석공(黃石公)의 말을 빌리자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나타냄이다.” 그야말로
측은지심 인지발야(惻隱之心, 仁之發也)다.

다음은 류성룡의 징비록 내용이다.

“이순신의 두 형 희신과 요신은 다 그보다 일찍 죽었다. 이순신은 두 형의 어린 자녀들을 자기 친자식같이 어루만져 길렀다. 출가시키고 장가보내는 일도 반드시 조카들이 먼저 하게 해주고 친 자녀는 나중에 하게 했다.”

큰형님 희신의 아들 뇌, 분, 번, 완과 둘째 형님 요신의 아들 봉, 해를 친아들 회, 열, 면보다 먼저 장가를 보냈다. 모두 어머니를 향한 효심(孝心)일 터이다. ‘효(孝)’ 자를 파자하면 ‘노인(老)’을 ‘아들(子)’이 업고 있는 형상이다. 어머니 초계 변씨(1515~1597)는 일찍 두 아들을 잃고 남편마저 먼저 보낸 뒤 의지할 곳이라곤 실질적 가장(家長)인 셋째 순신(舜臣)뿐이었을 것이다.

1592년 정월 초하루, 맑음.

“새벽에 아우 여필(禹臣, 우신의 자)과 조카 봉, 맏아들 회가 와서 얘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두 번이나 남쪽에서 설을 쇠니 간절한 회한을 이길 수 없다.”1592년 임진년 5월 4일은 어머니 생일이었다.

“오늘이 어머니 생신날인데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찾아뵙고 축수의 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 한이 될 것이다. 홀로 멀리 바다에 앉았으니 가슴에 품은 생각을 어찌 말로 다하랴.”

장군은 한산도로 진을 옮기기 전인 1593년 5월 일흔아홉 살 노모를 아산에서 전라좌수영 가까운 여수 고음천(웅천동 송현마을) 정대수(丁大水) 장군의 집으로 모셔왔다.
5년 동안 모신 그곳에는‘이충무공자당기거지(李忠武公慈堂寄居地)’라는 비석이 서있어 초계 변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594년 1월 11일 흐리나 비가 오지 않음.

“아침에 어머님을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고음천에 도착했다. 남의길, 윤사행, 조카 분과 함께 갔다. 어머님께 배알하려 하니 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큰소리로 부르니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 하여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말씀을 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여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어머님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나라에 대한 충(忠)을 이야기하고 아들은 효(孝)로써 어머니를 극진하게 대했다. 효는 만행(萬行)의 근본이다. 장군의 효심은 곧 충심으로 이어졌다.

‘군자행기효 필선이충(君子行其孝 必先以忠).’

군자는 효도를 행함에 있어 반드시 먼저 나라에 대한 충을 행한다는 충경(忠經)의 말씀대로다.

1595년 1월 1일 맑음.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다.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또 80세의 편찮은 어머니 걱정에 애태우며 밤을 새웠다.”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 깨나 어머님을 잊지 못하던 장군은 1596년(병신년) 10월 7일 어머님을 위로해드릴 좋은 기회를 맞았다. 82세 된 노모를 위한 수연 잔치를 여수 본영에서 차려드리게 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2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너온다니 나아가 막으라는 선조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한성으로 압송돼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길에 올랐다.

1597년(정유년) 4월 13일 맑음.

“일찍 식사 후 어머님을 마중하려고 바닷길로 나갔다. 아들 열이 종 애수를 보냈을 때는 배가 왔다는 소식이 없었다.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 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해암(蟹巖, 게바위)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1597년 4월 19일 맑음.

“일찍 나와서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 앞에 하직을 아뢰었다.”

어머니 장례도 못 치르고 떠났으니 꿈자리가 편할 리 없었다. 5월 6일 장군의 꿈에 나타난 두 형이 서로 붙들고 울면서 “장사를 지내기 전에 천 리 밖으로 떠나와 군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대체 모든 일을 누가 주장해서 한단 말이냐. 통곡한들 어찌하리!”라고 기록했다. 또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설운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건마는 아득한 저 하늘은 어째서 내 사정을 살펴 주지 못하는고! 왜 어서 죽지 않는지.”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파이데이아 칼리지 겸임교수
- 문화체육관광부 인생멘토 1기 (부모교육, 청소년상담)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이순신이 다시 쓰는 징비록’ ‘무너진 학교’ ‘밥상머리 부모교육’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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