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시그널 없는 사회, 난간 없는 미래
[김호중칼럼] 시그널 없는 사회, 난간 없는 미래
  • 온라인팀
  • 승인 2016.09.0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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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

 

누군가로부터 간절하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반대로 누군가에게 절박하게 도와달라고 말해본 경험이 있는가. 또 절체절명의 도움 요청에 눈감은 적은 없는가.

누군가의 불행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책임의식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최근 발생한 여고생 납치사건을 통해 구원의 사회적 시그널의 가치를 조명해 본다.

24세 최모씨는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한 주택가에서 여학생 A를 아파트 옥상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성폭행했다. 최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양을 위협해 자신의 집이 있는 남양주 화도읍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강제로 태웠다. 목적지 정류장에 버스가 다다르자 최씨는 A양을 내리게 했다.

하지만 A양은 순간 버스기사에게 달려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고, 최씨는 그대로 달아났다. 최씨는 아버지의 차를 끌고 강원도 속초방향으로 달아났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고 서있는 차를 들이받은 후 도주를 시도하던 중 체포됐다.

A양이 주택가에서 아파트 옥상으로 끌려가기까지 마주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성폭행 당하고 버스에 강제로 태워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마주쳤을까. 또 1시간동안 버스가 달리는 동안 흉기로 위협받으며 마주쳤을 버스 승객의 수는 얼마나 될까.

만약 A양과 행인 간에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신호가 있었다면, A양이 겪었을 악몽 같은 일은 아예 발생하지 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살려주세요’라는 말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도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경직된 입은 벌어지지 않는다. 대안이 필요하다. 특정할 수 있는 시그널이 널리 공유된다면 도움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에 점을 찍든,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으로 구부려 보여주든 외마디 말 이외의 시그널을 공유해야 한다.

박병철 변호사는 “시민의 생명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이 공감하고 쉽게 표시할 수 있는 위기탈출용 시그널 보급이 절실하다”며 “영국에서 시작한 블랙닷캠페인을 보강해 세계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시그널로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노비스 신드롬을 극복하는 이 시그널은 위험에 처한 시민이 적기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키티 제노비스라는 젊은 여성이 괴한에게 살해당하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제노비스의 비명소리를 들은 마을 주민 중 그 누구도 그녀를 돕지 않아 결국 살해되고 만다. 제노비스 신드롬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책임이 분산되면 군중은 구경꾼이 되고 죄의식 또한 크게 갖지 못하는 방관자 효과 때문에 소중한 별 하나가 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면 위기징후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널리 보급되어 있고, 훈련된 요원들이 각계에 포진되어 있다. 경찰과 군인 그리고 은행원과 항공 승무원 등 모두 각자의 시그널을 숙지하고 각종 대응훈련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A양처럼 시그널 없는 피해자를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과 훈련된 조직원들이 소통하는 단순명료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위기시 타인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쉽게 알아차리고 내밀한 행동으로 전환될 때 제노비스 신드롬은 극복될 것이다. 점 하나가 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시그널로 위험사회의 안전펜스로 방점을 찍어보자.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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